타 시·도, 축산검사·방역과 분리
공동방제단 활동 전시효과에 그쳐
국내 최고의 청정이미지를 자랑하는 도내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서 농가나 음식점 소비자 모두가 적잖은 피해를 보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AI는 겨울 철새들에 의해 유입되는 ‘계절 바이러스’였지만 올해는 4월에 처음 발생했고, 초여름 날씨의 5월 들어서도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국내에 유입된 바이러스가 죽지 않고 오리 닭 등 가금류를 매개로 사계절 아무 때나 전파되는 ‘AI 토착화’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AI 사태를 계기로 농촌 방역 체계를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소를 키우고 있는 김모(50)씨는 최근 소규모 농가의 방역을 위해 실시된 공동방제단의 방역 활동에 경악했다.
AI로 전국이 들끓고 있는데도 공동방제단이 찾아와 수동식 소형 분무기로 소독약을 축사 외부에만 뿌렸기 때문이다. 해당 지자체에 항의를 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보고상에는 동력 분무기가 있어 용역 계약을 마쳤다. 그 정도일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공동방제단의 방제 활동중 일부는 형식에 그치고 있다”며 “AI가 창궐한 요즘에도 이런 식이니 국내 방역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바로 보여주는 예”라고 주장했다.
공동방제단이 잘 운영되고 있는 곳도 문제이다.
약품비를 제외하고 1개 농가당 2,700원의 방역비가 정부에서 지원돼 1일 평균 인건비는 8만원 가량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공동방제단에 참여한 농민들은 본인 축사와 농사는 제쳐놓고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봉사활동을 하게 돼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농연 춘천시지부 관계자는 “농가들이 일당 8만원에 하루를 모두 소비하고 자신의 일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며 “2003년 구제역 방역 때 조를 편성해 방역단을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1년 내내 일정한 시간에 방역 활동을 하기는 어렵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현재는 구제역 중심의 방역활동만 이뤄지고 있으며 AI에 대한 방역활동은 전무하다.
구제역이나 AI에 똑같은 효능을 가진 소독약이더라도 희석비율이 구제역은 1000대1, AI는 200대1로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일괄적인 방역으로는 AI에 대한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축종별 방역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조언이다.
방역 업무 체계도 다른 몇 개의 조직으로 분산, 효율적인 방역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장단계에서의 농장 주변 소독은 시·군 공동방제단과 지역축협 공동방역단이, 가축 채혈 및 예방접종은 가축위생방역본부가, 혈청검사는 가축위생시험소가 담당 하고 있다.
가축위생시험소 등의 기관은 축산물 가공품 관리업무까지 담당, 업무량이 폭주하고 있으나 인원은 오히려 감축됐다.
강원도 가축위생시험소는 지난 1998년 조직구조조정을 통해 축산물검사과와 가축방역과를 1과로 통합했다.
그러나 신종 바이러스 출현으로 강원도와 경상남도를 제외한 타 시도는 모두 2개과로 부활했다.
특히 경남은 첨단양돈연구소가 일부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원도만 1개과를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공동방제 보다는 개별 방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공동방제단이 과거 구제역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됐고 위생 개념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전시효과라는 점을 들고 있다.
최근에는 이상기온 등의 여파로 연중 방역시스템 구축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공동방제는 집중 방제기간을 설정,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농가에 대한 꾸준한 교육을 통해 방역에 대한 의식제고와 장비지원을 통해 소규모 축산농가까지 자발적인 상시 방역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진단 키트 구입에 투입되는 예산을 가축 혈청검사비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농가들이 가축 혈청검사를 의뢰할 경우 질병에 따라 소는 마리당 4,000∼1만원, 돼지는 마리당 2,400∼8,700원, 닭(5마리 기준)은 9,700∼1만9,800원의 수수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 차원의 방역 시스템도 많은 문제점을 보였다.
AI 발병 초기 도내 감염 예측에 필요한 혈청검사 진단시트는 5,000여 개였지만 보유한 것은 1,400개에 불과했다.
실제 감사원이 이달 초 국회에 제출한 ‘AI 인체 감염 관리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러스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국내 비축분은 인구의 2%인 100만명에 그쳤다.
미국 등 선진국은 비축 목표를 인구대비 20∼25%로 설정, 비축하고 있다.
대부분의 광역시도가 방역 기본계획만 세웠고 AI 항바이러스제 배분, 환자발생시 병상운용 등 실행계획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군 역시 기본 방역계획조차 없었던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수의사 임환(48)씨는 “앞으로 우리나라도 AI에 대해 살처분 위주의 정책보다는 백신을 투여하는 방법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특정기간에만 방역을 집중하는 정부정책에서 탈피, 농가들의 의식구조 개선을 통해 민간 상시 방역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황형주 신형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