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5년(성종 6년) 본관은 강릉(江 陵). 자는 군거(君擧), 호는 삼가정 (三可亭)·쌍한정(雙閑亭). 아버지 는 승휴(承休)이며, 어머니는 감찰 (監察) 이중원(李仲元)의 딸.
■1504년(연산군 10년) 사마시에 합 격했지만, 모친상을 당한 뒤로는 과거에 응하지 않았다.
■연산군 때 단상법(短喪法·상례 기 간을 단축시키는 법)이 엄했으나, 모친상을 당하자 선왕(先王)의 제도 를 어길 수 없다 하여 3년 동안 최복 (衰服)을 입고 여막살이를 함. 중종 반정 후에 효자정문이 세워짐.
■1516년(중종 11년) 김정(金淨)이 풍악산(楓嶽山)에서 오는 길에 그 의 집을 방문해 며칠을 머물다가 작 별할 때 척촉장(철쭉나무의 지팡이) 을 선물하며 시를 지어 “깊은 산 층 암 절벽에 찬 서리 흰눈을 겪은 가지 일세. 가지고 와서 그대에게 주노니 오래도록 이 마음 간직하게나”라 하 자 “참뜻을 잃을까 의심스러워 궁 촌(窮村·아주 한적한 시골)에 살고 있으나 곧은 성품 남몰래 간직했으 니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으리오”라고 화답한 일화가 유명함.
■뒤에 현량(賢良)으로 천거돼 용궁 현감(龍宮縣監)이 되었는데, 그때 용궁 고을에는 송사(訟事)가 많았 으나 판단을 명석하고 빠르게 해 적 체된 송사가 없었다고 전해짐. 이어 사섬시주부(司贍寺主簿) 등을 지냄.
■1519년(중종 14년) 기묘사화로 파 직된 후 고향 강릉으로 돌아와 당 숙인 박공달과 쌍한정에서 시와 술, 담론으로 여생을 보냄.
■1546년(명종 1년) 71세로 별세.
■1645년 마을에서 사당을 세워 향 사를 지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