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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유인순 교수 “강원도 말을 사랑한 김유정…그의 행적 쫓기는 제 숙명이죠”

허남윤이 만난 사람 - 김유정 학술상 첫 수상자 유인순 강원대 명예교수

◇제1회 김유정 학술상 수상자인 유인순 강원대 명예교수가 허남윤 강원일보 문화체육부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승선기자

스승인 이어령 교수의 추천에 평생의 학문적 대상으로 만나

작품속 대사에 큰 관심 어휘 제대로 알리고자 사전 수십권 탐독

10여년 작업 끝에 펴낸 '정전 김유정 전집' 2권 열정·고뇌 담겨

“격동의 시대에 김유정 선생과 소중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유인순 강원대 국어교육학과 명예교수가 춘천을 대표하는 문인 김유정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암울했던 한국의 현대사와 마주하면서 만남을 갖게 된 김유정은 그에게는 '당혹감' 그 자체였다고 고백했다. 김유정과의 만남이 '첫사랑'과도 같은 기억이 아닐까 하는 기자의 기대감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유인순'에게 '김유정'은 무엇일까. 강원일보사와 김유정학회, 김유정문학촌이 공동으로 제정한 김유정 학술상의 첫 수상자인 유 교수를 만나 김유정을 향한 그의 진심을 들었다. 인터뷰는 김유정 학술상 시상식이 열린 10월16일 춘천 김유정문학촌과 지난달 초순 강원일보사 회의실에서 진행했다.

■그를 만나다=유 교수가 이화여대 대학원에 재학할 당시 소설가 박태원을 조명하고자 했다. 구인회 회원으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대표작으로, 친일과 친북 타이틀이 붙은 문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한국문단 최고 전성기로 꼽히는 1930년대 탄탄한 실험정신을 갖춘 작가로도 손꼽힌다.

1979년 10월26일. 통칭 '10·26 사태'가 발발한 날이다. 이 사건으로 유신 체제가 몰락했지만, 월북작가의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사상 검열도 한층 심화됐다. 유 교수가 소설가 박태원 연구를 접게 된 계기다. “너무 어이가 없었죠. 월북작가를 계속 연구하기에는 시대적 환경이 너무 척박했기에 결국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러니하게 박태원 연구를 포기하고, 그 자리를 메운 것이 같은 구인회원인 김유정이었다. 당대 모던보이로 꼽히는 박태원과 두루마기를 걸치고 다녔던 '촌뜨기' 김유정은 서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유 교수에게 김유정을 추천해 준 이는 스승인 이어령 이화여대 교수다. 추천 이유가 같은 '동향'이라는 것. “저와 같은 고향인 춘천 출신에다 제가 강원대 출신이라는 점이 이어령 선생님의 추천 이유였죠. 공부하면서 김유정 작품을 많이 접했지만, 평생의 학문적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당대 문인들이 '무엇을 또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주목할 때. 김유정과 박태원, 이태준 등의 실험정신이 투철한 작가들은 표현하는 방법과 형식 등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구조주의 학문에 심취한 유 교수에겐 필연적 만남이었다.

■분석, 그러다 만난 벽=유 교수는 강원대 농화학과에 입학해 졸업한 후 같은 대학 국어교육과로 편입했다. 이과와 문과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과학을 공부하면서 터득한 분석력은 기대 이상으로 주효했다. “화학은 정말 치밀하고 정확해야 하잖아요. 문화는 감성이 충만해야 하고요…. 하지만 왠일인지 이과의 치밀함이 국어를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웃음)

국문학의 구조주의는 어떻게 대립과 대칭, 병렬되는지에 대한 의미까지 따지는 작업이다. 문장 하나까지 쪼개고 짜맞추는 과정은 유 교수에겐 즐거운 과정이었다. 그렇게도 재미있었던 학문의 즐거움은 '김유정'을 만나면서 달라지게 된다. 그는, 그리고 그의 문학은 어느 한쪽으로 분석하기가 정말 힘들었던 것이다. “가르치는 일에서 벗어나서 다시 김유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두려워지더라고요. 누군가 김유정에 대해 물어보면 입을 꾹 닫아요.”

■집대성의 시작=학자의 길을 걸으며 우여곡절 끝에 만난 김유정. 그런 김유정 작품을 하나의 전집으로 내놓은 작업에 매진한다. 10여년에 걸친 작업 끝에 '정전김유정전집'이라는 제목으로 책 2권을 내놨다. 학자로서의 고뇌와 열정이 담긴 역작이다. “2005년 김유정 작품 22편을 현대어로 고쳐 '동백꽃'을 탈고했는데 소설만을 담아낸 탓에 아쉬움이 컸죠. 이후 수필 서간문 등을 모아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됐어요.” 그때부터 김유정의 작품을 다시 모았고, 흩어져 있는 수필과 서간문, 신문 게재 글 등을 찾아냈다. 유 교수가 기획하고 만든 김유정 전집은 그동안 발굴된 소설 32편과 최근 일본에서 찾은 동화 '세발 자전거' 1편, 이상과 안회남이 쓴 김유정 실명소설, 김유정 사후 그를 회고하는 지인들의 글, 김유정이 사랑한 3인의 여성인 박녹주·박봉자·김진수의 회고담 등을 담았다.

■그를 통해 만난 '강원도 언어'=유 교수는 김유정이 작품에서 쓴 대사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간 김유정책을 서울에서 주로 출판을 하다보니 편집위원들이 강원도 토종어휘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현대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오기도 많았어요. 참 아쉬웠죠.”

문제는 2008년 책을 다시 만들면서 현대어로 고치면서 모르는 단어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는 것. 하나하나 찾아서 내용을 바로잡는 과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김유정은 철저하게 주인공 이야기를 할 때 소리나는대로 적었다. 어느 대사 중 '알톨 같은 내사랑'이라는 문장이 있다. 문제는 대부분 출판사들이 현대어로 고치는 작업을 통해 이 문장을 “알토란 같은 내사랑”으로 수정됐다. 유 교수는 알톨의 표준어가 한옥을 지을 때 20~30㎝가량의 돌을 지칭하는 '알돌'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문장을 풀어쓴다면 “단단하고 쓰임새가 있는 나의 사랑”이 된다. “김유정의 어휘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많은 탐문을 했어요. 심지어 국어사전 수십 권을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대조하는 작업까지 해야 했죠.”

강원일보 사장을 역임한 신옥철 선생의 동생인 신기철·신용철 선생이 만든 새우리말사전에서 단어 하나의 의미를 찾은 적이 있다. 유 교수가 반갑고 흥분했던 당시의 기억을 회상했다.

■정신을 잇다=유 교수는 김유정 전집에 김유정 어휘사전을 붙였다. 마지막까지 뜻을 찾아내지 못한 단어들은 퀘스천마크(?)를 달았다. 누군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줬음 하는 바람에서다. 또 다른 분석을 통해 새로운 김유정이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가 올해 김유정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도 이렇게 김유정을 대하는 특별한 자세 때문이었다.

“김유정 전문가라는 말 자체는 너무 감당하기 버거운 말입니다. 그저 춘천의 문인 김유정을 따라 춘천의 말, 강원도의 말을 사랑한 김유정 선생의 행적을 쫓아갈 뿐이죠.”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았고, 변변한 후원없이 홀로 감당해 낸 '김유정 전집'이 김유정을 배우고 익히는, 또 연구하는 작가와 학자,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음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악수를 나누면서 가냘픈 유 교수의 손을 잡았다. 역작인 김유정 전집을 탈고한 그에게 “앞으로 계획이 어떠냐”고 묻자 다소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시장에 들어서 찬거리 좀 사야지.”

종종 걸음으로 시장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병약했지만 늘 글쓰기를 고민했던 김유정과 나란히 걷는 점순이가 연상됐다. 유 교수도 점순이와 같다는 말을 즐긴다고 한다.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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