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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나감이 아니라 나아감에 관하여… ‘은수의 세상’

[공연 리뷰] 강원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작 이민선 작가 작품
나아가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케하고, 세상을 나아가려는 이들을 응원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오른 연극 ‘은수의 세상’ 공연 사진. (사)한국연출가협회 제공.

우리는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달 30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오른 2023 강원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작인, 이민선 작가의 ‘은수의 세상’을 보고 떠오른 질문이었다. 문을 열면 바로 도로변인 8평 방에 살고 있는 은수는 낡은 2인용 소파를 집안에 들이고, 오로지 애인과 선생님에게만 자신의 세상을 허락한다. 그러던 은수가 외출 계획을 세우면서 전개됐다.

작품을 보며 각자의 세상에 견고한 문을 만들어두고 서로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특히 은수는 애인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렴풋이 알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은수의 모습은 관객들도 은수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오른 연극 ‘은수의 세상’ 공연 사진. (사)한국연출가협회 제공.

하지만 어느 순간, 조금은 의문점이 풀린다. 은수는 다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며 책 대신, 누군가 나의 세상에 방문하는 것 같다는 유튜브를 본다. 은수가 사는 방은 통제가 가능한 조그마한 공간이다. 은수는 자신이 통제가 가능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은수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은수가 가지고 있던 비밀, 자신의 뱃 속에 또 다른 세상을 품고 아이를 키워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쯤 그의 세상이 이해됐다. 은수는 자신의 몸 속 새로운 세상을 위해 용기를 내려 한다. 두려움을 딛고 나아가려 한다.

조그마한 공간을 벗어나 이사를 가려는 은수의 모습에서는 ‘성장’의 실마리를 찾았다. 변화를 시작하려는 그에게, 약간이나마 존경심을 갖게 됐다. 물론 성장은 밖으로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들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각자의 이유로 문을 열 모든 용기를 응원하게 됐다. 이날 공연 무대 오른쪽 절반은 은수의 세상이었고, 사이에 문을 두고 또 다른 왼쪽 절반은 은수의 세상 밖이었다. 무대가 치우친 듯 해 다소 낯설기도 했지만,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은수처럼 하나의 세상에 살고 있고, 다른 이들은 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연극이 끝나고 잠시 ‘우리는 단지 문을 열고 닫고, 닫고 또 열고 반복해가며 살아가면 그뿐이에요’ 라는 마지막 대사가 맴돌았다.

한국연출가협회 주최 ‘제32회 대한민국 신춘문예 페스티벌’ 공식참가작으로 선보인 이 작품은 반무섭 연출가가 연출하고 극단 작은 신화가 제작해 2일까지 네 차례 무대에 올랐다. 대한민국 신춘문예 페스티벌은 오는 9일까지 이어지며, ‘은수의 세상’은 강원지역 예술인들과 협업, 올 10월께 춘천연극제를 통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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