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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강릉 손자 사망' 급발진 소송서 할머니 운전자 패소…법원 "가속페달 브레이크로 오인해 밟았을 가능성"

재판부 "재연 시험 비교 결과 큰 속도 차이 없어" EDR 신뢰성 인정
"ECU 결함 아냐"…AEB 미작동·변속레버 미조작 주장도 모두 배척
도현 군 아버지 "기업 논리 선택한 판결" 비판…즉각 항소 의사 밝혀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진 이도현 군의 묘[김용래 강원특별자치도의원 제공]

속보=2022년 12월 강원 강릉 홍제동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진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의 가족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법원이 제조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재판장 박상준)는 13일 도현 군의 가족이 KG모빌리티(이하 KGM·옛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낸 9억2천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해 급발진이 발생했으며, 급가속 시 자동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EB)이 작동하지 않아 이 사건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도현이 가족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ECU 결함 주장에 관해 우선 '사고 전 마지막 5초 동안 가속페달 변위량이 100%였다'는 사고기록장치(EDR) 기록의 신뢰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EDR의 사고 전 운행기록이 저장되는 과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설령 ECU 결함으로 잘못된 주행 명령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런 오류가 가속페달 신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차량과 같은 연식의 차량으로 실도로 주행 재연 시험한 결과 EDR 기록상의 속도와 차이가 시속 8∼14㎞로 크지 않고, 모닝 차량과의 추돌이 티볼리 차량 성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 상황을 재연한 실험상의 한계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22년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60대 여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질주하다 지하통로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강릉=권태명기자.

"가속페달이 아닌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도현이 가족의 브레이크등 점등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티볼리 차량이 굉음을 내며 급가속 주행을 시작한 뒤부터 최종 충돌 시점까지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으며, 점등 방식에 대해서도 ECU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제조사 측 주장을 인용했다.

또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했을 상황을 두고는 국과수 분석대로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굉음 발생 직전 주행(D)→중립(N), 추돌 직전 N→D로 조작' 했음이 맞다고 판단했다.

도현이 가족은 음향분석 감정인이 '변속레버를 D→N 또는 N→D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분석한 점을 근거로 변속레버는 줄곧 D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음향분석 감정 결과 발견된 '다소 상이한 음향'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모닝 차량 추돌 전 굉음성 엔진구동음이 발생하기 직전 뭔가 '철컥'하는 듯한 다소 상이한 음향이 들린다"며 "음향 발생 시점, 엔진회전수와 속도 변화 등에 비춰보면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EDR의 '풀 액셀' 기록을 인정함에 따라 도현이 가족의 AEB 미작동 결함 주장에 관해서도 'AEB는 가속페달 변위량이 60% 이상이면 해제된다', 즉 60% 이상의 힘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면 AEB가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제조사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운전자(할머니)가 가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해 가속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여 이 사건 사고가 ECU 결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022년 12월 급발진 의심 사고 당시 모습. 강릉=권태명기자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페달 오조작 여부’였다. 도현 군 가족은 약 30초 동안 지속된 급발진 상황에서 도현 군 할머니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는 전형적인 ECU 결함에 의한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했다. 반면 KGM 측은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에 '풀 액셀'이 기록돼 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EDR 신뢰성 감정, 블랙박스 영상의 음향 분석, 국내 최초 사고 현장 실도로 재연한 주행 시험, 그리고 ECU 소프트웨어 전문가의 법정 증언까지 이어졌다.

그간 급발진 의심 사고는 대부분 운전자의 실수로 결론 났지만, 이번 사건은 약 30초간의 이례적인 급가속 지속 시간과 함께 "이게 왜 안 돼, 도현아"라고 외치는 운전자의 음성이 공개되며 급발진 가능성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도현 군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할머니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가 이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국과수의 "기계적 결함은 없고, 페달 오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만으로는 판단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사건에 대해 최종적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강원 강릉에서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차량의 결함에 의한 급발진 여부를 밝힐 '재연 시험'이 2024년 4월 19일 오후 강릉시 회산로에서 진행됐다.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티볼리 에어' 차량에 카메라와 변속장치 진단기가 설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판결 직후 도현군의 아버지 이상훈 씨는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씨는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오늘 판결은 진실보다 기업의 논리를, 피해자보다 제조사의 면피를 선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법정에 오기 전 도현이가 묻힌 곳에 가서 승소문을 건네주고 왔다. 절대 이대로 무너지지 않고, 절대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겠다. 최선을 다해 입증 책임을 다해온 결과들이 단 한 가지도 인용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재판 결과에 굴복할 수 없다"고 오열했다.

이씨는 "도현이는 이미 하늘에서 보고 있을 것이며, 같이 울고 슬퍼할 것 같다"며 "다시 전력으로 항소해서 제조물책임법 개정을 위한 도화선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13일 오후 강원 강릉시 난곡동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고(故) 이도현 군 아버지 이상훈씨가 재판을 마친 뒤 오열하고 있다. 이날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상준 부장판사)는 도현이 가족 측이 KG모빌리티(이하 KGM·옛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9억2천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02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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