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50만
칼럼

[대청봉] '민낯'의 세계

신형철 정치경제담당부국장

'민낯' 이라는 순 우리말은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 이라는 뜻이다. 맨얼굴 또는 민얼굴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순수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국립국어원을 찾아 보면 가려져 있던 본질이나 정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풀이 돼 있다.

언론도 '민낯이 드러났다''그의 민낯에 경악했다' 등등 좋지 않은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할때 주로 사용한다.

요즘들어 인간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바로 전쟁이다. 지난달 초 하마스의 선제 공격 이후 이스라엘의 반격은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극대화 하고 있다. 수 많은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의 모습, 부숴진 건물, 공포에 질린 모습 등은 전쟁이 얼마나 잔인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발생한 전쟁이 아직까지 지속되는 가운데 또다른 전쟁이 발발하자 전세계의 공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게임을 방불케 하는 전쟁의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생생하게 전세계에 송출되면서 추악한 '민낯'은 확연히 드러났다.

앞서 1998년 공개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초반 20여분간 전쟁의 추악함을 보여줬다. 영화의 배경이 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2차대전 분수령 중 하나로 연합군의 성공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작전이 본격화되고 노르망 해변 앞에서 병사들을 태운 상륙정의 문이 열리는 첫 장면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줬다. 빗발치는 총알에 속속 쓰러지는 병사들의 모습은 전쟁의 무서움을 새삼 깨닫게 했다. 포탄에 날아간 자신의 팔을 들면서 패닉에 빠진 병사, 머리를 부여잡고 한쪽 구석에서 공포에 젖어 소리를 지르며 병사는 전쟁의 잔혹함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다. 승리로 끝난 덕에 전쟁의 민낯은 조용히 가려 졌지만 관객들의 뇌리 속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같은 민낯은 사람이 육체적, 심리적으로 극한에 몰렸을 때 극대화 된다.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좀비' 영화는 평범한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평소 차분하고 주위에 상냥했던 사람이 위기에 직면하는 순간 포악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 관객들이 받는 충격은 더욱 커진다.

조선 사극에 좀비를 더한 넷플릭스의 킹덤은 그야말로 '민낯'의 절정을 보여준다. 권력을 소유하고 유지하고자 왕을 좀비로 만든 영의정, 사산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출산을 앞둔 여인들을 몰래 모은 중전 등은 위정자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형 좀비 영화에 전세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시청자들도 열광한 것은 이들 위정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또다른 의미로 '민낯'의 세상이다. 도시와 농촌 곳곳에 CCTV가 설치됐고 휴대전화의 성능 좋은 카메라는 누구든 영상을 촬영 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이 보고 있던 휴대전화 문자는 곧바로 뉴스에 송출되고 유튜브에는 정치인과 연예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이 영상으로 올라와 있다. 누구든 상처 받을 수 있고 누구든 상처를 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영상으로 기록되고, 송출되고,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민낯'의 세상이 도래했다. 이처럼 언제든 민낯이 드러날 수 있는 세상에서는 항상 조심할 수 밖에 없게 됐다. 본질이나 정체가 과거처럼 가려질 수 없는 세상이 된다면 더 이상 민낯은 부정적으로 사용 되지 않을 것 같다. 민낯이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라는 단어로만 쓰이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