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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강원의 점선면]조선 최고 화원들이 그린 하늘과 같은 스승의 초상

乃菴(내암) 崔左海(최좌해∙1738~1799)) 초상화

내암 최좌해 초상화 초본
내암 최좌해 초상화-정조대왕의 어진을 그림 당시 최고의 화가 이명기와 김홍도가 그린 초상화로 대학자의 풍모를 잘 그려낸 수작이다.
내암 최좌해 초상화-정조대왕의 어진을 그림 당시 최고의 화가 이명기와 김홍도가 그린 초상화로 대학자의 풍모를 잘 그려낸 수작이다.
내암 최좌해 초상화 초본
乃菴(내암) 崔左海(최좌해∙1738~1799)) 초상화

속보=조선의 회화 중에 인물화는 가장 최고 수준에 오른 장르로 평가받고 있다. 실존 인물과 똑같이 정밀하게 그린 인물화는 현대 피부과 교수들이 조선시대 앓았던 피부병 연구과제나 논문소재로 사용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여준다. 최고의 화원들이 그린 초상화 발굴은 (사)춘천역사문화연구회(이하 역문)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역문은 2017년 자하 신위의 맥록을 발간했다. 이때 번역 맡은 한희민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전문위원이 자하 신위가 만난 지역의 인물 후손들을 찾아다니며 초상화와 문집 등 자료를 발굴했다.

이번에 발견된 춘천시 신북에 사는 수성최씨 내암 최좌해 초상화(본보 지난 4월10일자 6면, 4월17일자 2면 보도)는 임금의 어진을 그린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초상화는 무오년(戊午年·1798년) 9월 당대 최고의 어진화사로 불린 이명기(1756~1813)와 김홍도(1745~?)가 함께 그린 것으로, 최좌해의 일생을 기록한 ‘내재유사(乃齋遺事·고려대 소장)’ 에 관련 내용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 최좌해 선생의 화상은 무오년(1798년) 9월 어느 날에 이루어졌다. 화사 이명기가 얼굴을 그렸고 몸을 그린 이는 김홍도이고 족자를 만든 장인은 방효랑인데 모두 당대 솜씨 있는 사람들이라고 적고 있다.

이명기(주관화사)와 김홍도(동참화사)는 1791년 정조 어진을 그린 최고의 실력을 가진 화원이다. 특히 호산관 이명기는 1794년 허목의 82세 초상화(보물)을 남겼고, 1796년 서직수 초상(보물)을 그리는 등 초상화에 관해서 독보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최좌해 초상화는 1798년 그려진 것으로 초본과 인물화가 각각 세트로 갖춰진 2점의 초상화로 보기 드문 그림이다.

먼저 사후상 메모가 붙어 있는 민자관(民字冠,유건)을 쓴 초상화는 조선 선비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심의(深衣)를 입고 포대(布帶:베로 만든 띠)를 두르고 단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손가락 약지와 소지(새끼손가락)사이가 조금 벌어져 있으며 손톱도 잘 다듬어져 있다. 뛰어난 묘사로 내암의 학자다운 풍모를 전달해 낸 당대 최고 화가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방관(四方冠)을 쓴 초상화는 생존상으로 메모가 있는 작품으로 두루마기 차림으로 검은 세조대(細條帶)를 두르고 있다. 손톱이 길게 그렸으며 두 손을 가지런하게 모으고 있다

인물화를 완성하기 전에 그린 초본은 사방관(四方冠) 쓴 인물이 2개와 민자관을 쓴 인물 1점 등 3점이 있다. 민자관 초본은 45cm✕67cm이며, 사방관은 45cm ✕55cm, 57cm✕72cm 두 개 인데 완성본으로 옮긴 그림은 45cm ✕55cm 작은 크기 그림이다.

민사관 완성본 전체 족자 크기는 85.8cm ✕167.2cm이며 초상화 크기는 77.7cm,✕ 110.5cm로 실제 크기와 거의 같게 묘사됐다. 족자의 상단과 하단도 다 보존돼 있어 기록에 언급된 족자장의 솜씨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사방관 초상화 전체 크기는 85cm 130.7cm며 인물은 78cm 113cm이다.

섬세하게 그려내 인물은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사방관 얼굴은 이마와 왼쪽 눈 아래가 칼로 그어진 흔적이 남아있다. 수성최씨 후손들은 6.25 전쟁 때 피난 가는 도중에 만난 중공군이 칼로 훼손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내암의 초상화는 2006년 보물로 지정된 서직수 초상(세로 148㎝, 가로 73㎝)보다 크다.

1798년 9월, 춘천의 선비들은 존경하는 스승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조선 최고의 화원을 모셔와 기록물로 남겼다. 최좌해 초상화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지역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