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한 해를 정산하는 12월과 맞닥뜨렸다. 온 산을 붉게 물들였던 노랑, 빨강 봄꽃들의 잔치도,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부풀었던 6월의 녹음방초도, 마지막 남은 혼을 다해 스스로 타오르던 단풍도 세월의 뒤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필자는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한 해를 성찰하는 마음으로 천직으로 안고 있는 농업의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곤 한다. 지금은 기후위기, 농촌위기, 지역위기의 시대로 동시다발 경고등이 켜 진지 오래다. 폭염과 산불, 홍수와 가뭄은 일상화되었고, 자연환경에 가장 민감한 농업현장에서 벌어지는 상시적인 일이 되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변화는 환경변화에 취약한 고랭지 채소 등 농업 생산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농업인구는 우리나라 전체의 3%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3%가 97%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식량안보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3%의 농부를 지키는 것은 97% 국민의 몫이 되는 셈이다.
최근 강원특별자치도에서는 59만5,000여㎥ 규모의 강릉 주문진읍 향호리, 철원 동송읍 오덕리, 양구 해안면 만대리, 인제 인제읍 덕산리 4개 지역을 ‘농촌활력촉진지구’로 지정하며 4대 규제 완화의 서막을 올렸다. 올해 6월8일 강원특별법 특례가 시행된 지 4개월 만에 성사된 메가성 권한행사의 팡파레를 울린 것이다. 농촌활력촉진지구는 개발이 불가능한 농업진흥지역 규제를 일시에 풀어 개발할 수 있는 특례다. 이번 지구 지정은 의미심장한 일로 농촌지역의 활성화와 낙후지역 개발로 농촌 활력을 창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탁월한 전략과 영감으로 농업인의 피부에 와닿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 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요즘 농업과 관광을 연계한 경관농업이 뜨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경관농업이 지역다움을 반영하기보다는 특정 작물의 대량 재배에만 몰입돼 있어 다양성을 살리지 못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많다. 경관농업은 농산물을 이용해 농촌경관을 지역관광의 자원으로 활용하여 농가소득 증대 등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 농업 유형으로, 정부는 2005년 경관보전직불제 시범사업을 펼치고 농가의 경관농업 참여를 조성하고 있다. 경관농업은 지역 축제와 연계되는 사례가 많아 생활인구 유인책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서도 매년 평균 50만명이 방문하는 청보리밭 축제는 지역경제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경관농업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 강원특별법에도 경관농업의 지원책을 담아주고, 경관농업 조례도 만들어 농업의 생태적 가치를 보전하고 공익적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금년 한 해를 성찰해 보고 새로운 한 해를 소망해 보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길목에서 우리의 농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콩을 발효해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먹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의 장 담그기 문화는 한 해의 농사를 결산하는 것으로 조상들의 혜안이 담긴 농촌만의 문화가 아닌가. 이참에 강릉 음식문화의 정수인 ‘동치미’도 인류무형유산 반열에 올랐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우리의 농업·농촌에 청량한 소식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