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특별자치도 내륙의 영월·정선·태백은 험준한 산악 지형 속에 자리한 불교문화의 보고다. 깊은 산골짜기마다 자리 잡았던 사찰들은 자연에 기대어 수행과 신앙을 이어간 공간이자, 오늘날 폐사지로 남아 강원도의 불교 역사를 증언하는 귀중한 유산이다. 이곳 사지들은 단순히 사찰이 머물던 터가 아닌, 시대의 변화와 불교문화의 전파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 깊은 산속에 피어난 불교문화
영월·정선·태백 지역의 폐사지는 하나같이 산세가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고려와 조선 시대, 수행과 명상을 위해 승려들은 속세를 떠나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고, 그곳에 법당을 짓고 가람을 꾸렸다. 사찰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리했고, 산세에 따라 건축된 터는 오늘날 폐사지가 되어도 당시의 공간적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표적인 곳으로 ‘오백나한’으로 널리 알려진 영월 창령사지가 있다. 창령사는 고려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한때 지역 불교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현재는 일부 석조 유물과 기단부만 남아 있지만, 발굴 조사로 드러난 규모와 유물들은 이곳이 단순한 산중 사찰이 아니라 지역 불교문화의 구심점이었음을 증명한다. 흥녕사지 역시 고려 시대 번성했던 사찰로, 남아 있는 석탑(징효대사탑비·보물)과 석조 유구가 당시의 위상을 보여준다.
정선은 북평리사지가 눈길을 끈다. 오랫동안 정확한 위치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지는, 백석봉 남쪽 석띠골 상류에 위치해 있으며 고려시대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 정선군지에 따르면 북평리에 석대사(石坮寺)라는 사찰이 있었던 기록이 있는데 현재는 묘지 조성 등으로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백에는 △백산동사지 △심원암지 △장성동사지 △창죽동사지 △황지동사지 등의 폐사지가 있다. 대부분 비지정 문화재로, 위치조차 정확히 남아 있지 않거나, 자연재해와 개발로 인해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태백지역의 사지들은 해발고도가 높고 자연환경이 척박한 곳에 자리해, 조선 후기까지 이어진 강원도 불교문화의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사지들은 당시 불교신앙의 전파 경로와 수행문화, 산지사찰의 특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폐사지에 담긴 불교문화의 흐름
이들 폐사지는 단순히 사찰이 사라진 자리가 아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불교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고 변모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단서다. 특히, 영월·정선·태백 지역은 수도권과 강원 내륙을 잇는 교통로에서 살짝 벗어난 깊은 산중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외부의 변화에 비교적 자유롭게 독자적인 불교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또 광업과 농업이 함께 이루어진 이들 지역에서 사찰은 단순한 수행처를 넘어, 지역 공동체와 함께 호흡하며 삶의 일부가 되었다. 불교문화가 주민들의 삶 깊숙이 스며들었고, 사찰은 신앙의 중심이자 교육과 구호의 장으로 기능했다. 사찰이 사라진 뒤에도 그 정신은 공동체의 역사 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 폐사지에 남아 있는 부도와 탑비, 석등과 석탑들은 당대의 불교미술과 신앙적 열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폐허가 된 터에서도, 석조 유물들은 여전히 당당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강원 불교문화의 유구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폐사지는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왕실과 지역의 후원을 받으며 번성했던 시기, 그리고 억불정책과 전란 속에서 소멸해간 과정 자체가 한국 불교사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산악지대에 위치한 사지들은 접근성의 어려움으로 인해 외세의 침략과 변화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고유한 신앙 형태를 지켜내며 독창적인 불교문화를 만들어갔다.
◇ 폐사지 보존과 활용 방안
영월·정선·태백 지역의 폐사지는 현재 대부분 터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강원 불교문화의 뿌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추가적인 발굴과 연구, 체계적인 보존 작업을 통해 이들 유적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 특히, 창령사지와 흥녕사지는 발굴과 연구 성과를 토대로 역사·문화 탐방로 조성 등 관광자원화 가능성도 높다. 산속에 숨겨진 폐사지들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다. 그것들은 자연과 인간, 신앙과 수행이 함께 어우러진 강원도의 깊은 역사적 숨결이다. 앞으로 이들 유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보존 노력이 이어진다면, 이들 폐사지들은 한국 불교문화사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