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가는 길이 중요하다.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는 올 3월27일 ‘서교동 최규하 가옥’ 앞에서 명예도로 ‘최규하길’ 명명식을 개최했다. ‘최규하길’ 조성은 2008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교동 최규하 가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추진됐다. 제10대 대통령을 지낸 최규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격변의 시대를 조용한 품격으로 살아냈다. 청렴과 절제, 검소와 신의. 이제 그의 삶을 닮은 길이 우리 곁에 생겼다. 불과 90m 남짓한 거리지만 그 울림은 깊다. ▼‘최규하길’이 품은 의미는 형식적인 기념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것이 큰 것’이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최규하는 대통령이었으나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빛나는 화려함보다 묵묵한 소명을 택했다. 국무총리 시절 석유파동으로 연탄광부들과 함께하며 “평생 연탄을 쓰겠다”던 약속을 그는 끝까지 지켰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자세.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지워버리지만, 가치 있는 것은 남는다. 최규하는 퇴임 후에도 마포구 서교동 작은 가옥에서 검소하게 살았다. 연탄 한 장에 깃든 그의 철학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세상이 요란할수록 묵묵한 신뢰와 절제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치도 경제도 삶의 태도도 ‘최규하길’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가. 번쩍이는 간판과 휘황찬란한 외형에 가려진 진정성을 다시금 돌아볼 때다. ▼길이란 사람이 다녀야 길이 된다. 그리고 그 길이 사람을 만든다. ‘최규하길’은 흔한 도로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이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 화려한 수식어가 없는, 그러나 깊이 있는 삶. 우리도 그런 길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지켜야 한다. ‘최규하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하나의 다짐이다. 그 다짐을 잊지 않는다면 90m의 길은 결코 짧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