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자리는 수년째 고스란히 생채기가 남아 있다. 산불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나도 이재민들과 산불 피해자들은 여전히 당시 피해에 몸서리치고 있다.
■산불이 집어삼킨 보금자리=2023년 4월11일 오전 8시30분께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대형 화재로 확대돼 강릉 경포동 일대 산림 120.7㏊를 태우고 274가구 551명의 안식처를 앗아갔다. 김모(75)씨도 당시 산불로 집을 잃었다. 평생 모은 돈으로 200㎡ 규모의 집을 지었는데 마당 데크를 설치하던 날 산불이 집을 집어삼켰다.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집을 잃었다. 다행히 강릉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고 김씨는 정부가 공급한 24㎡(7평)의 임시주택에 들어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김씨가 거주하는 곳은 말이 임시주택일뿐 조립식 컨테이너다. 경제적 문제로 당장 집을 구하거나 지을 수도 없어 이재민의 삶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중학생 때부터 모았던 LP를 듣기 위해 비싼 오디오와 스피커도 샀고, 거실도 넓게 지었다”며 “같은 구조로 다시 지으려면 2년 전보다 2배 이상은 더 든다. 무엇보다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LP판이 모두 타버린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강릉시에 따르면 올해 3월 31일 기준 129세대 273명이 여전히 임시주택과 임대주택에 머물러 있다.
■산불 트라우마에 생업도 포기=고성군 토성면 교암리에 거주하는 장창덕(52)씨는 아직도 산불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상처)에 시달리고 있다. 2019년 4월4일 오후 7시께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불이 바람을 타고 속초 도심 방향으로 번지며 대형 산불로 커졌다. 당시 속초시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하며 산불 현장에서 교통통제에 나섰던 장씨는 화마에 휩싸인 도시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장씨는 “산불은 꺼졌지만 이후 호흡곤란 등 증세로 수년간 구급차에 실려가기를 반복했지만 병원에서는 심장과 폐 등 신체적인 문제는 없다고 진단했다”며 “3년이 지나 대형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장애 판정을 받고 여전히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장애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며 결국 생업을 포기했다. 집도 팔아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로 사용했고 결국 아내와 아이들까지 친정이 있는 외지로 보냈다. 산불 피해 의상자로 지정받기 위해 여러차례 정부에 신청했지만 노동상실력 기준 미달 등으로 혜택을 받지 못했다.
도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산불 피해자와 이재민에 대한 정부의 보상이나 지원은 산불 발생 직후에만 집중되어 있다”면서 “상위법에도 관련 근거가 없어 지자체에서도 조례 제정 등을 추진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