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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평생 검은 피 쏟는 광부의 병 ‘진폐(塵肺)’

[석탄문화 세계유산화]-탄광 디아스포라(5)
20년 광부 오석종씨 동료 사망사고로 탄광 떠났지만
진폐로 고통, 검은 피 나와도 진폐등급 받는데 10년
국내 직업병 진폐환자 1만9천명, 실제는 3만명 추산

‘10톤에 1명’…광부들이 자주 썼던 자조적 표현이다.

증산보국(생산을 늘려 나라에 보답한다)은 석탄산업 전성기 탄광촌의 구호였다.

생산량이 늘수록 산업화는 가속화됐지만 광부의 무덤도 늘었다.

이제 생산은 멈췄지만 검은 피를 토하는 광부들의 직업병 진폐증이 그들의 노후를 괴롭히고 있다.

■“광산 들어오라” 권유한 친구의 죽음=근로복지공단 태백케어센터에서 만난 오석종(73·태백)씨는 1967년 열 다섯살에 다섯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광업소에 취업했다. 당시엔 나이가 어려 여성광부들과 함께 갱도 밖의 선탄장에서 일했다. 3년이 지나 동갑 친구가 “갱도에 들어가면 쌀을 세 배 더 받을 수 있다”고 권유했다. 오 씨와 친구는 함께 채탄부로 이직했다. 17년이 흐른 어느 날 오 씨는 “갱 내부가 매몰돼 사람이 갇혔다” 말을 들었다. 수습을 위해 도착한 현장에는 동갑 친구가 돌무더기에 파묻혀 있었다. 오 씨는 “이미 숨졌으니 영안실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목욕탕에서 직접 친구를 씻겼다”며 “비누로 친구 몸에 묻은 석탄을 지우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석탄가루 검은 피 나와도…진폐 인정은 별 따기=오 씨는 큰 충격을 받고 결국 1987년 광산을 떠났다. 그러나 막장의 흔적은 몸에 남았다.

오 씨는 “아침에 일어나 가래침을 세면대에 뱉으면 석탄가루를 머금은 진득한 검은 피가 나온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선탄부 3년, 채탄 및 굴진작업 17년 동안 석탄 분진을 마신 후유증이다.

오 씨는 “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x-ray)사진에 폐가 온통 새하얗게 보인다”고 말하며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2005년 처음 진폐심사를 받았다. 장해연금 지급대상인 11급을 받기까지는 무려 10년이 걸렸다. 그는 “매년 심사를 받았지만 정확한 기준 없이 의사들이 다수결로 판정해 ‘정상’이라고 나왔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가 강하게 항의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며 불합리한 판정 절차를 지적했다.

■산업전사 치켜세우지만 처우는 ‘연탄재’만도 못해=그는 태백케어센터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며 은퇴 광부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설립한 진폐환자 요양시설이다. 그는 형편이 좀 낫지만 동료들을 생각하며 “연탄재만도 못한 처우”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어디서 일했던 광부가 고독사로 죽었다더라는 소식을 심심찮게 듣는다”며 “제대로 진폐급수를 받지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하는 은퇴광부들의 사정을 살펴달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산재보험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업무상 진폐 환자는 2023년 기준 1만9,222명이다. 하지만 실제 환자는 3만여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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