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80만
사회일반

[광복80년 특별기획]강원독립운동가 미소 찾기 프로젝트2

강원일보는 광복80주년을 맞아 강원서부보훈지청과 함께 AI기술을 활용한 ‘강원 독립운동가 미소 찾기 프로젝트’를 103명의 독립운동가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선정된 독립운동가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등록된 도 출신 독립유공자 1,011명 중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등재된 인물들로, 지난 15일 80명에 이어, 이번에 23명의 이미지를 추가로 공개한다.


81.엄주현(북강원·1900~1984년) 함용환을 교주로 하는 삼도교에 가입해 신도들을 이끌고 경성 조선총독부 앞 광장에서 만세운동 참여

82.정용규(북강원·1880년~미상) 1919년 4월6일 이천군에서 마을 주민 100여명을 모아 독립만세운동 전개

83.정용화(삼척·1921~2004년) 1938년 춘천농업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 상록회에 가입해 농촌 계몽과 민족사상 고취 활동 진행

84.정의찬(삼척·1913~1988년) 1931년 야학에서 100여명에게 '농민독본'을 가르치며 조국독립의 필요성 고취

85.정철근(춘천·1899~1966년) 1919년 3월19일 왕십리보통학교 교정에서 300여명을 이끌고 독립만세 외침

86.정해경(횡성·1877~1926년) 1919년 4월1일 횡성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당일 선창자로 시위 이끔

87.차봉철(홍천·1897~1963년) 1919년 4월1일에 있었던 홍천만세운동 계획하고 주도

88.차봉환(홍천·1900~1950년) 1919년 4월1일 홍천만세운동에 참여해 주민 200여명과 군청 등지에서 독립만세 외침

89.천성환(용인·1917~1954년) 1938년 고성남공립소학교 교사로 재직중 독서회 조직해 한글 보급과 민족정신 함양에 힘씀

90.최기호(양구·1888~1969년) 1919년 4월3일 양구만세운동에서 태극기와 독립만세 깃발 제작해 시위대에 나눠주고 함께 행진

91.최병훈(철원·1872~1947년) 1919년 철원군 천도교 교훈으로서 군내에 독립선언서 배포

92.최승혁(홍천·1886~1957년) 1919년 4월1일 홍천만세운동에서 태극기를 제작하고 군중 500여명을 모아 시위 주도

93.최양옥(원주·1893~1983년) 군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고 독립운동단체 공명단을 조직해 무장 거사 거행

94.최영구(양구·1901~1959년) 천도교인으로 1919년 4월3일 양구만세운동 준비과정에서 천도교신자들에게 시위 참여 권유

95.최우명(양구·1859~1940년) 천도교가 주도하는 1919년 4월3일 양구만세운동에 앞장섬

96.최원배(철원·1904~1949년) 1928년 조선공화정치국에 가입해 동지를 모아 무장 거사 준비

97.최윤달(삼척·1911~1970년) 1928년부터 삼척청년동맹·여운리 농민조합 등 조합 활동 통해 항일투쟁

98.최학길(양양·1875년~미상) 1919년 4월4일 용천리 주민 수십 명을 이끌고 양양만세운동에 참여해 시위 주도

99.추교철(양양·1909년~미상) 1928년 조선소년총연맹·양양청년동맹에서 활동하고 1933년 양양적색노농조합을 결성하는 등 항일운동 전개

100.하명식(고성·1915년~미상) 1936년 고성프로문예연구회를 조직해 신사상 연구와 정치 비판 활동 진행

101.한범우(원주·1902~1920년) 1919년 3월27일 원주만세운동에 참여해 군수에게 만세를 부를 것을 요구

102.홍순창(강릉·1904~1956년) 1938년 양구 매동공립소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식민지 정책과 차별을 비판하고 항일투쟁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 가르침

1033.황동연(고성·1919년~미상) 1937년 비밀결사 고성민족문학연구회에 가입해 독립을 목표로 조선어 연구·소설 작품 교환·정치 비판 등 활동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