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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압록강 2,000리를 가다]⑥고향을 지키는 조선족 어부 김흥선

압록강 지류 훈강 따라 살아온 20년의 세월
사라져가는 조선족 마을…여전한 민족의 情

1960년생 김흥선씨는 중국 요녕성 관전민족자치현 하로하 조선족향 선구촌 압록강변에 산다. 자신의 배 위에서 그물을 정리하며 출어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요녕성 단둥시 관전민족자치현 하로하 조선족=김남덕기자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가르는 압록강은 때로는 생명을 품고 때로는 삶의 터전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올여름 연이은 폭우로 곳곳이 물에 잠기며 수해 피해도 이어졌다. 강 유역에는 여전히 물길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강을 따라가다 보면 그 곁에서 세월을 버텨온 사람들이 있다. 압록강의 지류 훈강(渾江). 물안개가 깔린 굽이진 길을 돌아 도착한 강가 마을에서 평생 강물과 함께 살아온 조선족 어부 김흥선(65)씨를 만났다. 거센 물살에 흔들려온 세월만큼 그의 손에는 노고가 배어 있었고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다.

김씨의 하루는 새벽 다섯 시에 시작된다. “오늘처럼 비가 많이 퍼붓는 날은 못나가지만 해가 뜨기 전에 물길을 보기 위해 매일 일찍 나가요.” 아침에는 강에서 고기를 잡고 오후에는 밭에 나가 콩과 옥수수를 돌보는 게 그의 일과다.

1960년생 김흥선씨는 중국 요녕성 관전민족자치현 하로하 조선족향 선구촌 압록강변에 산다. 자신의 배 위에서 그물을 정리하며 출어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요녕성 단둥시 관전민족자치현 하로하 조선족향=김남덕기자

그가 잡은 가장 큰 고기는 25㎏에 이르는 대어였다. 예전에는 한 근(중국 기준 500g)에 12원까지도 받았지만 요즘은 양식장이 늘면서 자연산 값이 크게 떨어져 3~5원밖에 받지 못한다. 김 씨는 “최근에는 북한 신의주 일대 수해로 댐에서 물을 가두지 않고 흘려보내면서 강의 물길이 달라져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도 잦다”며 “강에 나갈 때는 그저 많이 잡히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비 오는 날 강에 나가지 못하면 처마 아래에 앉아 약주 한 잔을 기울이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렇게 20년 넘게, 새벽 다섯 시의 발걸음은 변함없이 훈강을 향해 이어져왔다.

강과 얽힌 인연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졌다. 김흥선씨는 중국 요녕성 단둥시 관전민족자치현 하로하 조선족향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을 지키고 있다. “어렸을 때는 맨날 강에서 놀았어요. 수영도 하고 물 장난도 치고 물고기도 쫓아다니고… 강이 놀이터이자 친구였어요.”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활짝 웃었다. 당시만 해도 마을에는 40가구 가까운 조선족이 함께 살며 공동체를 지켜왔다. 하지만 지금은 7가구 남짓만 남아 옛 풍경을 잇고 있다. “옛날엔 조선학교에서 조선말도 배우고 집집마다 조선말이 들렸는데 이제는 말을 쓰는 사람이 없다 보니 나도 점점 잊어버리게 돼요. 아쉽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해요.”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취재진을 맞이하는 김흥선씨의 주름진 얼굴 가득 번지는 웃음에는 여전히 정이 묻어났다. 낯선 이들에게도 과일을 내주고 잠시 쉬어가라 두 손에 고된 노동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활짝 터지는 미소만큼은 누구보다 따듯했다. 사라져가는 공동체 속에서 강과 함께 살아온 세월의 고단함과 사람을 향한 정도 함께 담겨 있었다.

1960년생 김흥선씨는 중국 요녕성 관전민족자치현 하로하 조선족향 선구촌 압록강변에 산다. 자신의 배 위에서 그물을 정리하며 출어 준비를 하고 있다. 하로하 조선족향=김남덕기자

압록강의 사계절이 민족의 역사를 비추듯, 훈강의 사계절은 어부의 삶을 비춘다. 봄에는 잉어가 힘차게 물길을 거슬러 오르고 여름과 가을에는 잔고기들이 그물에 걸려 강을 메운다. 겨울이 되면 강은 얼음장처럼 굳어버린다. 취재진이 찾은 8월의 강은 폭우로 흙탕물이 가득했고 안개가 자욱했다. 하지만 거센 물살 속에서도 강을 곁에 두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물가에 기대 살아온 어부의 삶을 비췄다. 김흥선 어부의 삶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강과 함께 이어온 기억이자 조선족 공동체의 자취다. 중국 단둥시=홍예빈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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