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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사탐런’ 현상

사람이 길을 걷다 보면 발걸음이 쉬운 쪽으로만 향하는 법이다. 마치 물이 낮은 곳을 찾아 흐르듯, 수험생들의 선택 역시 부담이 적고 성과가 눈에 보이는 길로 쏠린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사회탐구 선택 비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결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오는 11월13일 치러지는 2026학년도 수능에 지원한 55만4,174명 중 사회탐구 영역만 선택한 수험생은 32만4,405명(61.0%)이다. 지난해(26만1,508명)보다 24.1% 증가했다. 사회탐구 1개와 과학탐구 1개를 선택한 지원자는 8만6,854명(16.3%)으로 지난해(5만2,195명)보다 66.4% 급증했다. 반면 과학탐구만 선택한 수험생은 12만692명(22.7%)으로 역대 가장 낮은 비율을 나타냈다. 이공계를 지망한다면서도 과학탐구 대신 사회탐구로 발걸음을 옮기는 현상, 이른바 ‘사탐런’은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대학에서 필요한 역량을 시험에서 외면한 채, 입시만을 위한 유불리의 셈법이 지배하는 현실. 이 길의 끝이 과연 우리 사회가 바라는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맞닿아 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당나라 시절 과거 시험에선 문학적 재능만 중시하다가 정작 국정 운영에 필요한 실무 능력이 부족한 인재들이 배출되곤 했다. 지금의 사탐런도 그와 닮았다. 수험생들은 더 높은 등급과 합격 가능성을 좇아 사회탐구를 택한다. 그러나 그 선택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의 학문적 깊이나 연구 역량과 연결되지 못한다. ▼시험에서 덜 힘든 과목을 택하는 것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과가 미래의 과학기술 저변을 약화시키는 길이라면 문제의 본질은 개인이 아니라 제도에 있다. 분절된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융합형 인재를 키우겠다는 문·이과 통합 취지는 분명했다. 그러나 이는 수험생의 학습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 아래 과학적 사고의 비중을 줄여버렸다. 제도를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사탐런 현상이 우리 교육의 뿌리를 흔드는 파열음으로 남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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