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통의 전화가 삶에 균열을 만든다. 낯선 목소리가 자식의 이름을 불러대고 경찰을 사칭하며 돈을 요구하는 순간 노인의 가슴은 휘청거린다. 믿음과 정이 무기처럼 악용되는 이 범죄는 기술의 진보가 만든 또 다른 그림자다. 강원특별자치도가 추석을 전후해 고령층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예방교육에 나선 것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절박한 대응이다. 실제 피해자의 절반 가까이가 60대 이상이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고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 목마는 선물처럼 다가왔지만 결국 성을 무너뜨린 배신의 도구였다. 오늘날의 보이스피싱도 다르지 않다. ‘금융지원’이라는 친절한 목소리, ‘자식의 위기’라는 애절한 호소가 트로이 목마처럼 집 안 깊숙이 스며들어 가계의 안전망을 무너뜨린다. 피해자들은 범죄의 논리에 속았다기보다 인간적 본능에 이끌린 것이다.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 사회적 권위에 대한 신뢰가 덫이 된 셈이다. 기술적 수법이 아무리 교묘해져도 결국 파고드는 지점은 인간의 심리다. ▼“미혹된 귀는 눈보다 더 쉽게 속는다”는 말이 있다. 눈앞에 보이는 현금 다발은 경계하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친숙한 말투 앞에서는 방심한다. 메신저 속 프로필 사진이 자식의 얼굴일 때, ‘설마 가짜겠나’ 하는 순간 이미 범죄자는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힌다. 강원도가 경로당과 복지관을 찾아가 경찰관의 실제 경험담과 모의 시나리오 훈련을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겪어봐야 기억되는 법이다. ‘아차’ 하는 찰나를 미리 체험하게 함으로써 낯선 유혹의 전화를 받았을 때 의심이 먼저 튀어나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고령층이 디지털 배움의 기회를 상시적으로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과 통신이 전부 스마트폰으로 움직이는 시대, ‘정보 격차’는 곧 ‘범죄의 표적’이 된다. 추석이라는 명절, 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웃는 자리에서 보이스피싱의 경계법을 나누는 것도 좋은 예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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