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빛으로 소통하는 만국 공통의 언어라는 말이 있다. 단둥시 관천만족자치현의 록강촌, 압록강을 따라 자리한 산골 마을에서 조선족 농민사진가 최명하(61)씨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었다. 농민이자 지도자, 그리고 마을의 기록자로서 압록강과 함께 살아온 세월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은 사진이다.
최 사진가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록강촌 당지부서기로 마을을 이끌었다. 당지부서기로서 그가 처음 마주한 현실은 수풍댐의 수위가 오르내리며 매년 무너지는 농사였다. “옥수수를 심으면 잠기고 또 잠기니까 주민들의 삶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마을의 생계와 안전을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죠. 그때 유채는 잠겨도 다시 올라온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록강촌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든 약 13만㎡(중국단위 200무)의 유채밭이 형성됐다.
“유채는 물에 잠겨도 다시 피잖아요. 사람들은 처음엔 관광을 위해 시작한 줄 알지만, 사실은 수풍댐 물난리로 잠기던 땅을 살리기 위한 일이었어요.” 유채꽃이 피던 봄날, 그는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을 기록했다.햇살이 내려앉은 유채꽃 장관과 꽃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장면씩 담아 단둥 지역 누리집에 올리자 뜻밖의 반응이 이어졌다고 말한다. “단둥시 누리집에 유채꽃사진을 올렸는데 연락이 정말 많이왔어요.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단둥시 간부 일곱 명이 마을로 찾아오고 이후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 500여명이 찾아오면서 작은 산골 마을은 활기를 되찾았죠. 사진 한 장이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줄은 몰랐는데 그때 이게 그냥 꽃이 아닌 우리 마을의 얼굴이라는 걸 알았죠.” 이후 유채꽃이 피는 계절이면 록강촌 일대는 노란 물결로 뒤덮인다. 유채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는 민박을 열고 식당을 마련했다. 록강촌은 점차 농촌 관광지로 발전했고 사진 애호가들의 출사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그에게 유채꽃은 마을을 살리고 사람과 지역, 그리고 기억을 이어주는 상징이 됐다.
“나는 예술가가기 보다 그냥 내가 사는 삶, 마을의 이야기를 찍어요. 꽃을 찍어도 결국은 사람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그 뿌리에 ‘조선족으로서의 의식’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 사진가는 조선족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지만, 이후 조선학교가 사라지면서 조선어를 배울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고 그가 조선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언어를 듣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선사람이면 의식을 가지고 조선말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는 나뿐만이 아닌 아들한테도 마찬가지죠. 아들에게 늘 하는 말이 민족이면 자기 뿌리를 알아야 하고 그걸 계속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에요.”고 말한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조선말과 닮아 있었다. 사진과 말 모두 사라져가는 것을 붙잡고, 잊히지 않게 남기는 일로 최 사진가는 “사진은 눈으로 찍지만, 결국 마음에 남잖아요. 조선말도 그래요. 점점 조선족이 줄어 입으로는 점점 덜 쓰게 되지만, 마음속에서는 사라지지 않지요.”고 강조했다.
그의 새로운 목표는 해바라기밭을 만들어 관광과 농업이 결합된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드는 것. “유채는 봄이고, 해바라기는 여름이잖아요. 어느 계절이든 사람들이 놀러올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압록강의 물살처럼 빠르게 흐르는 세월 속에서 그는 사진을 통해 사라져가는 말과 마을, 시간을 기록하며 새롭게 피어날 순간을 기다린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