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의 영혼의 키를 한 뼘 키울 수 있다면, 성공한 연극이죠.”
한국 연극계의 거장 이병훈 연출가가 강원도립극단의 2025 세계명작극장 ‘한 겨울밤의 꿈’ 연출을 맡았다. 지난 4일 도립극단 연습실에서 연습에 매진 중인 이 연출가를 만났다.
이병훈 연출가가 강원도립극단과 합을 맞춘다는 소식에 공연 전부터 관심이 쏠렸다. 이 연출가는 “지역 극단의 특색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강원도에 왔다”며 “단순히 지역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올리는 것이 아닌, 지역에서 연극이라는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병훈 연출가는 배우들의 연기와 몰입은 물론, 작품 대한 인문적 이해도 강조하는 연출가다. “배우는 죽을 때까지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 뒤로 치열하게 연습에 매진 중인 도립극단 단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연출가는 “플랫폼 다변화로 한 작품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아지면서 배우들의 이해력은 높아졌지만 집중력은 되려 떨어질 때가 있다”며 “신체가 단련되지 않으면 기본이 무너지고, 기능적 연기에 치중하게 되기에 훈련을 강조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라는 수식어답게 이 연출가가 선택한 작품은 ‘한여름 밤의 꿈’이다. 강원의 겨울을 떠올리며 제목은 각색했다. 작품은 남녀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사랑과 오해, 갈등과 용서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녹여낸다.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희곡 중 이번 작품을 고른 이유를 묻자 그는 “사랑은 언제 들어도 혹하는 주제 아닌가”라며 웃어 보였다.
이 연출가는 “사랑의 가변성을 정말 재미있게 풀어내고 싶었다”며 “남녀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관계 등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봐도 공감 가는 주제들을 통해 연극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거듭해서 연극의 재미를 강조한 이병훈 연출가. 그가 말하는 ‘재미’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이 연출가는 “예술과 예능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짐짓 진지하게 입을 뗐다. 그는 “재미는 기본, 그다음은 의미다. 연극은 관객을 앉아있게 만드는 데에서 나아가 깊은 감동을 주는 데까지 가야 한다”며 “사랑 이야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가부장제의 억압을 비추고, 사랑의 가변성을 성찰하는 데까지 사고의 층위를 확장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의식의 성장을 돕는 예술. 일흔을 넘은 이병훈 연출가가 부단히 연극을 연구하고, 시대를 읽는 이유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들도 있다. 빠르고 짧은 콘텐츠가 각광받는 시대, 고전의 긴 호흡이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이 연출가는 “고전은 오래된 예술이 아닌, 오랜 시간 살아남은 예술”이라는 답을 내놨다. 그는 “다만 시대의 변화에 맞춰 관객보다 빨리 가는 연극을 만들고자 했다”며 “대사를 줄이고 극의 템포를 빠르게 연출해 배우들이 무대에서 운동선수 마냥 뛰어다니게 했다”고 귀띔했다.
이번 작품은 도내 폐광지역(태백·정선·영월·삼척)을 순회하며, 지역 청소년의 단체 관람을 지원한다.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끝으로 이병훈 연출가에게 물었다. ‘좋은 연극’이란 무엇인지.
이 연출가는 “나는 왜 연극을 하는가, 사람들은 왜 지난 2,500년 동안 연극을 보는가 매번 자문해왔다”며 “개인의 인식을 성장시키고, 사회가 성숙되는데 약간의 기여를 하는 것이 좋은 연극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관객들이 영혼의 키가 한 뼘 자라나 극장을 나선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다”고 덧붙였다.
한 겨울밤의 꿈은 오는 21일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 첫 공연을 올린다. 이후 정선아리랑센터(11월 26일), 영월문화예술회관(12월 3일), 삼척문화예술회관(12월 23일)서 관객들을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