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있는 술이란?=우리는 맛있는 술을 빚고 싶어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주변사람들로부터 ‘정말 맛있다’고 칭찬받을 만한 술을 빚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맛있는 술을 빚기 위해서는 우선, 술의 맛을 알아야 한다. 술맛에는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네 가지가 있다. 나머지는 향기성분이다. 짠맛과 매운맛은 특별히 첨가제를 넣지 않는 한, 술에는 없다.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 중에서 어느 한 가지 맛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고, 각각의 맛이 조화롭게 조금씩 맛을 낼 수도 있다. 그런데 맛은 주관적이고 관념적이다. 즉 사람들마다 입맛이 달라서, 누구는 단맛을 좋아할 수도 있고, 신맛이나 쓴맛을 좋아할 수도 있다. 한 가족이 주류매장에 와도 입맛따라 고르는 술이 다 다르다. 그리고 맛은 관념적이어서, 감각기관을 통해 바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뇌를 통해서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관능훈련을 별도로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와 어느 분위기에서, 어느 술잔에 먹느냐에 따라서 맛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먹는 술이라면, 당연히 그 술은 맛있을 수밖에 없다. 아니 맛있어야 하기 때문에 맛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차만별인 사람들의 입맛 중 어느 맛에 맞추어야 ‘맛있는 술’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에다 향기성분까지 가세하면, 머리 아파진다. 지금까지 알려진 향기성분만으로도 천 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처음부터 술 빚을 엄두가 안날 수 있다. 그러면 향기성분은 차치하고, 술맛을 어떻게 낼 것인가부터 알아보자.
■ 술맛 내기=맛있는 술을 만들기에 앞서 술의 맛을 낼 줄 알아야 한다. 그 다음은 선택의 문제이다. 단맛이 맛있다고 생각되면 단맛의 술을 만들 줄 알아야 하고, 신맛이나 쓴맛이 맛있다고 느낀다면 그 맛을 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첫째, 단맛부터 알아보자. 아스파탐 등의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고, 술의 단맛을 어떻게 낼 수 있을까? 간단하다. 전통주는 쌀 등 전분질 원료를 발효시키는데, 전분질 원료가 곧바로 알코올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먼저 포도당으로 바뀌고, 그 후에 발효작용에 의해 알코올이 된다. 여기서 포도당이 100% 알코올로 바뀌지 않으면 술에는 포도당이 남아(이를 ‘잔당’이라 한다) 술이 달게 된다. 물론 사람이 실제로 단맛을 느끼려면 최소한 10brix 이상의 당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술에 잔당이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물을 적게 넣으면 된다. 물량이 적을수록 당도는 올라간다. 물량이 적을수록 효모의 활동이 저조해지고, 그 결과 발효가 활발하지 못한 결과 잔당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쌀량을 그대로 두고, 물량만을 변화시켜서 어느 정도의 당도가 나오는지 경험적으로 확인해서 데이터화 해야한다.
둘째, 신맛을 어떻게 낼까? 술의 신맛은 젖산균, 즉 유산균에서 나오는 젖산(유산)의 맛이다. 막걸리를 냉장고에 오래두면 신맛이 나는 것을 ‘식초가 된다’고 하는데, 이는 식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젖산의 맛이다. 식초의 신맛은 초산에서 나온다. 술의 신맛, 곧 산미(酸味)라고도 하는데, 술이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이 산미 때문이다. 산미가 과하면 너무 시어서 안되지만, 적당하면 아주 품위있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산미이다. 그런데 그 ‘적당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가 문제이다. 대체로 서양인들과 여성들, 젊은 사람들이 동양인과 남성들, 노년층보다 산미를 선호한다. 따라서 본인의 술의 소비층을 누구로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앞에 말한 바와 같이 술의 맛을 무엇으로 정할지는 결국 ‘선택’의 문제이다.
술의 신맛은 젖산균이 만들어 내는 맛이라고 하면, 술의 신맛은 젖산균의 분포에 따라 달라진다. 젖산균이 많으면 신맛이 강해질 것이고, 젖산균이 적으면 신맛은 약해진다. 누룩으로 빚는 전통주에는 젖산균이 많이 들어 있어서 술의 신맛을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히려 단맛과 쓴맛을 내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술의 신맛은 물량이 많을수록, 발효력이 약할수록 강해진다. 그래서 신맛을 적극적으로 내려고 하기 보다는 단맛과 쓴맛의 통제를 통해 신맛을 잡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셋째, 술의 쓴맛은 알코올 자체에서 나오는 맛이기 때문에, 알코올발효가 잘될수록 쓴맛이 강해진다. 평소에 소주를 즐겨먹는 사람들은 단맛이나 신맛보다 쓴맛을 선호한다. 알코올발효가 잘 되는 데에는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누룩의 역가가 높아야 하고, 물량이 적어도 안되고 지나치게 많아도 안된다. 그리고 단양주 방식보다는 이양주, 삼양주가 낫고, 밑술발효가 잘 되어야 한다.
넷째, 술의 감칠맛은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서 나오는 맛이다. 술의 풍미를 가져오는 맛이다. 그런데 감칠맛이 지나치면 술에서 장(醬)내가 나서 호불호가 생길 수 있다. 적당해야 한다. 일본의 청주는 감칠맛이 약하고, 중국 청주는 오히려 장내가 심하고, 한국은 적당한 편이다. 누구는 이를 ‘누룩취’라고 하는데, ‘누룩취’는 일본이 한국술을 폄하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다. 술의 깊이와 풍부함은 이 감칠맛이 결정한다. 감칠맛을 내기 위해서는 술의 원료에 포함되어 있는 단백질의 양을 적당히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한 번 빚기, 두 번 빚기?=한 번 빚는 술을 단양주라고 하고, 두 번 이상 빚는 술을 중양주라고 한다. 중양주 중에서 두 번 빚는 술을 이양주, 세 번 빚는 술을 삼양주 라고 한다. 조선시대 때에는 사신접대용으로 10번까지 빚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 번만 빚으면 되는데, 왜 힘들게 두, 세 번 술을 빚을까? 그것은 누룩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 누룩은 자연상태의 균을 착상시켜 번식시키다 보니, 효모의 개체수가 많지 않고, 힘도 약하다. 따라서 이러한 누룩으로 단양주를 빚게 되면 발효가 불안정해져서 술에 신맛이 강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누룩에 포함된 효모의 개체수를 늘리거나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두, 세 번 빚는 것이다. 이양주는 밑술 1회, 덧술 1회 빚는 것이고, 삼양주는 밑술 2회, 덧술 1회(또는 밑술 1회, 덧술 2회) 빚는 것을 말한다. 밑술을 통해 효모를 증식시키고, 이후 덧술을 통해 본격적인 알코올 발효를 하는 방법이다.
안정적인 발효가 되려면 효모가 충분히 많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밑술이 잘 되어야 한다. 밑술의 상태에 따라 술의 품질이 결정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술을 잘 빚는다’는 것은 곧 ‘밑술을 잘 빚는 것이다’고 말할 정도이다.
이양주나 삼양주가 효모의 증식과 안정적인 발효에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술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맛을 강하게 하려면 단양주, 새콤달콤하게 하려면 이양주, 쓴맛을 강조하려면 삼양주로 빚으면 된다.
밑술에는 멥쌀을 쓴다. 멥쌀이 찹쌀보다 분해가 잘 되어 효모의 증식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덧술에는 멥쌀과 찹쌀 모두 사용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달고 부드러운’ 술에는 찹쌀, ‘쓰고 독한’ 술에는 멥쌀을 사용하는데, 술에는 정답이 없으며, 멥쌀과 찹쌀을 섞기도 한다.
■ 술 빚기의 기준=옛 문헌에는 여러 가지의 술빚기 방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술을 잘 빚기 위해서는 그런 술들을 전부 빚어보아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물론 그 모든 술을 빚어보면 그 속에서 원리와 이치를 터득할 수 있겠지만, 시간도 너무 많이 소모되고, 그 효과도 의문시된다. 술빚기에 어느 기준을 잡고 몇 가지 변수들에 변화를 주면서 술의 맛과 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전통주 술빚기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양주를 빚는다고 할 때, 덧술의 쌀량이 기준이라고 보면 된다. 예컨대 덧술에서 쌀 반말(4kg)의 술을 빚는다고 할 때, 그 덧술의 쌀량을 기준으로 밑술의 쌀량, 누룩량, 물량이 정해진다. 밑술의 쌀량은 덧술 쌀량의 5분의 1, 즉 800g이 될 것이고, 누룩량은 500g 정도가 적당하다. 물론 누룩량은 누룩의 역가를 고려해서 계산해 보아야 하겠지만, 전통누룩의 역가를 300sp라고 가정할 때 대체로 500g이면 된다. 물량은 2.5ℓ정도가 적당하다. 물량을 늘리려면 덧술에서 물을 추가하면 된다. 이와 같이 위 기준으로 우선 빚어보고, 술이 잘 되면, 차츰 쌀량과 물량에 변화를 주면 된다. 덧술에 들어갈 멥쌀과 찹쌀의 비율을 달리할 수도 있고, 누룩도 밀누룩뿐만 아니라, 쌀누룩, 녹두누룩 등도 사용해 볼 수 있다.
■ 전체 결론=지금까지 10회에 걸쳐 한국 전통주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한국 사람이 정작 한국 술에 대해 잘 모른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나라가 일제에 빼앗기고, 나라를 되찾은 후에도 위정자들이 일제를 답습하면서 생긴 문제들이다. 조상들이 정말로 맛과 향이 뛰어나고 품격있는 고급스러운 술들을 후손들에게 남겨주었는데, 그것이 100년 가까운 시간동안 단절된 것이다.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한국적인 것이야말로 세계적인 것이다. 우리의 술향을 복원하고, 우리 스스로도 그것을 즐기고, 자랑스럽게 여기면, 세계로 뻗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 술이 없이 음식만으로 K-food를 완성할 수 없다.
정회철 전통주조 예술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