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는 아직 돌이 채 되지 않은 아들이 있다. 최근 아이의 주된 일과는 온종일 무언가를 붙잡고 일어서는 것이다. 소파를 짚고 힘겹게 일어섰다 싶으면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일어선다. 그 반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인간은 본래 넘어짐을 통해 걷는 법을 배우는 존재임을 새삼 확인한다.
법원에서 마주하는 풍경도 이와 유사하다. 필자는 강릉지원에서 개인회생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개인회생법정을 찾는 이들은 감당하기 힘든 부채로 인해 경제적 삶의 중심을 잃은 사람들이다. 사업 실패나 가족의 병환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이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법원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아기의 걸음마와 채무자의 재기에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아이가 일어서는 힘은 오롯이 자신의 신체적 성장에서 나오지만, 채무자가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사회적 비용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개인회생제도는 빚을 없애주는 마법이 아니다. 채무자가 면책받는 채무는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채권자가 감내해야 할 손실로 남는다.
기록에 첨부된 채권자목록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이다. 그 명단에는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때로는 채무자의 재기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이웃이나 지인들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다시 시작할 기회'는 타인의 인내와 양보를 딛고 서 있는 셈이다. 따라서 법원이 내리는 면책 결정은 결코 가볍거나 당연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법원은 채무자의 사정을 깊이 헤아리면서도 동시에 그 이면에 있는 채권자의 희생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채무자의 소득과 재산 내역을 꼼꼼히 살펴 개인회생절차 개시결정을 하고, 변제계획안이 인가되면 엄격한 변제계획의 수행을 요구한다. 채무자를 불신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임을, 그 엄중한 무게를 잊지 말라는 무언의 당부이기도 하다.
넘어진 자가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재생산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다만 그 과정이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일어섬이 누군가의 어깨를 딛고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걷는 걸음마다 그에 대한 부채 의식을 잊지 말고 더욱 치열하게 삶을 영위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 고통을 분담해 준 채권자들과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기와 채무자의 모습은 겹쳐진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아기의 다리에 근육이 붙듯, 뼈아픈 실패와 그에 따른 책임을 감내하는 과정은 마음에 단단한 굳은살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넘어진 자리에서 배우고, 다시는 쓰러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한다.
이제 12월이 되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었다.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모든 이들에게 조심스러운 응원을 보낸다. 부디 이번에 얻은 기회가 헛되지 않기를, 다시 땅을 딛고 선 두 다리가 지난날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삶을 지탱해주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