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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발언대]지방의 미래는 자치와 책임에서 비롯된다

진기엽 전 대한석탄공사 상임감사

최근 원주·횡성 행정통합을 ‘지방주도 성장 대전환’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일방적 주장이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통합이라는 단어는 언뜻 효율과 성장, 경쟁력 강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행정통합은 단순히 행정구역을 넓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지역의 정체성과 자치의 구조, 주민의 삶의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한 선택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통합 논의는 속도나 구호가 아니라 충분한 논의와 검증을 전제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기초자치단체 간 행정통합은 행정체계를 효율화하는 기술적 선택이 아니다. 이는 지방자치의 틀 자체를 재편하는 정치적·사회적 결정이다. 주민의 일상 속 행정서비스 접근방식이 달라지고, 지역의 우선 과제가 바뀌고, 자치단체의 의사결정구조 또한 크게 변한다. 그만큼 통합 논의는 신중해야 하며 그 출발점은 언제나 주민이어야 한다.

지방 주도 성장은 규모를 키우는 데서 비롯되지 않는다. 진정한 지방분권은 행정구역의 확대가 아니라 각 지역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자치역량을 키우는 데서 출발한다. 중앙집중적 사고를 벗어나겠다고 하면서 또 다른 형태의 집중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지방분권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횡성은 그동안 농·축산업과 청정자연환경을 기반으로 한 고유한 발전 경로를 만들어왔다. 이는 도시 중심의 산업·상업·서비스 성장 논리를 중심에 둔 원주시의 발전 방향과는 분명히 다른 길이다.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하나의 행정 단위로 묶는 방식은 각 지역이 축적해온 정체성과 정책 방향을 희석시킬 가능성이 크다. 특히 통합 논의에서 가장 냉정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은 재정 문제다. 현재 횡성군의 연간 예산은 약 6,400억 원 규모다. 이 예산은 횡성군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 실정에 맞는 농업·복지·교육·생활 인프라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편성되고 집행되는 재원이다. 그러나 행정통합이 이루어질 경우 이 예산은 더 이상 ‘횡성군민만을 위한 재정’으로 온전히 존재하기 어렵다. 통합 이후의 예산은 하나의 광역적 재정 틀 안에서 편성·집행될 수밖에 없고 행정 수요와 인구가 많은 지역에 우선적으로 배분되는 구조를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원주·횡성 통합은 ‘상생’이 아닌 ‘흡수’로 인식될 소지가 크다. 행정·재정·인구·산업구조에서 현저한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통합을 서두를 경우 횡성의 의사결정권 약화와 지역 정체성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주민의 동의다. 기초자치단체 통합은 행정기관 간 협의나 정치적 선언으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충분한 정보 제공과 공론화, 그리고 주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절차가 선행되지 않는 통합 논의는 어떠한 정당성도 가질 수 없다.

횡성의 미래는 횡성군민이 결정해야 한다. 외부의 논리나 일정에 떠밀려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횡성의 재정과 권한, 정체성을 지키면서 그에 맞는 길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횡성군민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통합을 거론할 때 우리는 더 신중해야 한다. 지방의 미래는 더 크게 묶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 있게 서고, 각 지역이 가진 강점을 스스로 발전시켜 나갈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성장과 진정한 지방분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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