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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문해력 이후의 질문, 학력은 어디로 가는가

이 경 전 인제교육장(강원교육문학 회장)

◇이경 전 인제교육장

요즘 학력 저하라는 말은 거의 자동 반사처럼 문해력 저하와 연결된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고, 긴 문장을 버텨내지 못하며, 질문 앞에서 멈칫거린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이 현상을 단순히 ‘아이들 탓’이나 ‘독서 부족’으로 설명하는 순간, 우리는 문제의 절반만 보고 있는 셈이 된다.

문해력 저하는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읽지 못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때 배움은 느린 일이었다. 한 문장을 여러 번 읽고, 뜻을 짐작하고, 다시 돌아와 맥락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사고는 조금씩 깊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일상은 다르다. 검색은 즉각적이고, 요약은 넘쳐나며, 결론은 클릭 한 번이면 손에 들어온다.

기다림과 축적, 반복은 필수가 아니다. 오히려 느리면 뒤처진다.

이 속도 사회에서 학습 역시 변형되었다. 아이들은 묻는다. “이거 시험에 나오나요?” “이걸 왜 배워야 하죠?” 질문 자체는 정직하지만, 그 안에는 지식의 가치가 이해가 아니라 효율로 환원된 시대의 감각이 담겨 있다. 배움의 이유가 사유가 아니라 효능성에 맞춰졌기에, 전통적인 학력은 자연스럽게 얕아질 수 밖에 없다.

교육 현장 역시 자유롭지 않다. 활동과 수행평가는 늘었지만, 정작 한 개념 앞에 오래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교사는 진도와 평가, 민원 사이에서 ‘천천히 생각하게 하는 수업’을 선택하기 어렵다. 실패와 미완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배움은 점점 정답 중심으로 향한다.

독서 환경의 변화도 학력 저하에 적지 않은 몫을 한다. 독서는 더 이상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과제가 되었다. 학교와 지역 곳곳에 도서관이 넘쳐나는 이른바 ‘독서 과잉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은 사유의 장이 아니라 수행해야 할 목록이 된다. 읽는다는 행위는 질문을 낳기보다 기록과 인증으로 귀결된다.

한 권의 책을 얻기 위해 십 리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밤을 새워 필사하던 시절을 거쳐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책은 부족했지만, 그만큼 한 문장을 오래 붙들 수 있었고, 읽는 행위 자체가 삶의 일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책이 많아진 만큼 생각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요즘 독서 문화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읽어야 하기 때문에 깊게 읽지 못하는 역설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역설적으로 긴 문장을 이해하는 힘, 맥락을 읽는 능력, 윤리적 판단과 질문의 깊이는 다시 귀해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학력 저하는 끝이 아니라 전환기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한다. 정답을 빠르게 찾는 사람인가, 아니면 질문을 오래 붙들 수 있는 사람인가. 그 질문에 대한 사회의 대답이 달라지지 않는 한, 학력에 대한 논쟁은 계속해서 표면만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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