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풀뿌리 민주주의의 이상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최근 김병기·강선우·김경 파문은 단순한 개인 일탈을 넘어 구조적 부패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 시의원 김경은 국회의원 강선우에게 1억원의 공천 헌금을 건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업체들이 시 산하 기관과 수차례 수의계약을 따냈다는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그야말로 지방정치의 ‘족벌 이권사슬’을 방증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천이라는 민주주의의 첫 관문이 돈으로 거래되는 구조는 지방자치의 뿌리를 병들게 한다. 이런 부작용은 국회의원의 지방선거에 대한 공천 영향력에서 비롯된다. ‘공천 은혜’를 입은 지방의원 등은 총선 때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되갚으려 할 것이다. 이처럼 서로의 선거를 돕는 체제가 되풀이되면서 여야 모두 지방선거 공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강세 지역은 공천 헌금이 10억원 이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와 이권, 혈연이 엮인 이 ‘풀뿌리 카르텔’은 지방정치의 신뢰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지방자치의 원래 취지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중앙권력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주민의 삶과 밀착한 결정을 주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 이상과 정반대다. 오히려 중앙권력보다 더 폐쇄적이고, 비공식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공천과 행정이 움직이고 있다. ‘풀뿌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지방정치는 특정 인물과 집단의 사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몇몇 인물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은 제도 자체를 뿌리부터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공천 구조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구조적 결함과도 직결된다. 특히 인과관계의 틀에서 비공개적 공천 → 금전 거래 → 이권 개입 → 행정 신뢰 하락이라는 고리가 선명하다. 그리고 그 최종 피해자는 주민이다.
공간적으로도 이 문제는 로컬의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이로 인한 국가 이미지도 손상된다. 전 지구적 민주주의의 흐름 속에서 지방정치의 후진성은 한국 전체 민주주의의 신뢰에 흠집을 낸다. 한국의 지방정치는 민주주의 공동체의 기준에서도 낙제점이다. 1995년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이후 시민 참여는 확대됐지만, 공천 구조는 여전히 폐쇄적이다. 과거에는 관료 출신, 지역 유지가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더니, 지금은 혈연, 학연, 금력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미래를 생각할 때 지금 이 구조를 깨지 않는다면 지방정치는 점점 더 시민으로부터 멀어지고, 결국 해체 논의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로 번진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나. 우선 공천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화다. 적어도 일정 규모 이상의 지방의원 후보 공천은 토론회와 시민 심사단을 거치는 예비선거제를 도입해야 한다. 둘째 지방의원 후보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해 무소속 후보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때다. 이미 기초의원 선거에서 정당 공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셋째, 예비후보 단계에서의 후원금 및 지출 구조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단순한 신고가 아니라 시민 감시단의 실시간 검증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모든 제안의 근저에는 하나의 원칙이 자리한다. 주민의 정치적 대표는 오직 주민이 결정해야 하며, 돈과 인맥, 중앙정치의 그림자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일상 속에서 실현될 때만이 진짜 힘을 발휘한다. 지방자치의 이상은 권력의 집중이 아닌 분산, 독점이 아닌 다원성에 있다. 지방선거가 ‘작은 권력’의 싸움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민주주의’의 실현이 되려면, 공천 구조의 전면 개편은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뿌리부터 손질하지 않으면 나무는 다시 썩는다. 대한민국 지방자치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