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等(오등)은 玆(자)에 我朝鮮(아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1919년 민족의 운명을 뒤흔든 이 한 문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3월 1일, 다시 한 번 활자로 되살아났다. 정부 수립 후 처음 맞은 3·1절을 앞두고, 독립운동조직인 ‘문화동지회’가 1945년 창간한 강원일보는 지역언론으로는 처음으로 3·1운동 30주년 특집 지면에 ‘기미독립선언서’ 전문을 통째로 실어, 새 나라의 뿌리가 3·1정신 위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했다.
1949년 3월 1일자 2면 중앙에 배치된 독립선언서는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온전히 지면을 채웠다.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이 선언문은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는 구절로 시작해, 일제 식민지배를 거부하는 민족 자결의 의지를 천명했다.
선언서 게재에 그치지 않고, 특집 지면은 도내 각 지역에서 벌어진 3·1만세운동과 항일 투쟁의 현장을 한 편의 실록처럼 더듬어 갔다. 1919년 3월 옛 춘천 장터(요선시장 일대)에서 일경에 상투를 잡혀 끌려가면서도 밤새 통곡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민초들의 절박함, 일제에 맞서 싸운 허씨 형제의 항거 등은 당시 지면 곳곳에 생생한 장면으로 기록됐다. 오늘날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과 인물들의 투쟁이 그때 이미 세밀하게 정리돼 있었던 셈이다.
특히 본보는 도내 각 지역의 항일 투쟁 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가장 격렬했던 ‘항일의 성지’로 양양을 꼽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맹렬하게 저항했던 화천의 움직임을 비중 있게 다루며 지역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세밀한 기록을 남겼다. 반면 춘천과 양구 지역의 투쟁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했다고 냉철하게 지적하는 등 사료로서의 정직함도 잃지 않았다. 당시 지면 하단에는 격자 형태의 칸 안에 춘천, 강릉, 양양, 홍천 등 주요 인사들의 명단이 나열됐으며, ‘각지의 봉화’라는 소제목 아래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의 성함이 한자로 빼곡히 기록됐다. 다수의 독립운동 참여자가 거명됐으나, 이들 중 현재까지 공적이 공식 인정되지 않은 인물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김동섭 한림대 객원교수는 “지면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독립운동가 외에도 생소한 이름들이 다수 등장한다”며 “신문에 기록된 미서훈자들의 행적을 철저히 고증해 유공자로 모실 수 있도록 하는 역사적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문덕 강원특별자치도 광복회장은 “나라사랑 정신의 결정체인 독립선언서 전문을 게재한 1949년 강원일보 지면은 도민의 단결을 강조한 상징적 유산”이라며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독립정신을 교육과 실천으로 이어가는 일은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짊어져야 할 책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