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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정칼럼]보이스피싱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한경우 춘천지방법원 판사

형사재판을 하면서 정말 자주 접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범죄 유형이 바로 보이스피싱 범죄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속여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힐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피해자의 피해금을 수령하거나 그 피해금을 배달하여 공범이 되어버린 현금수거책들 마저도 보이스피싱 조직원들로부터 아르바이트나 일자리를 제안받고 이에 속아서 범죄에 가담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더구나 현실의 형사법정에서는 많은 경우 보이스피싱 범죄의 주범들은 잡혀 오지 않고, 돈을 잃은 피해자와 주범들에게 속아서 범죄에 가담하게 된 현금수거책 피고인만이 남아서 안타까운 재판을 하게 된다.

처음 보이스피싱 범죄 재판을 할 때는, 이처럼 악랄하고 교묘한 범행수법에 분노하면서 보이스피싱 범죄의 예방과 그에 대한 경각심을 위해서라도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행위에 대해서는 기존의 사기 범죄에 비해 더 엄벌에 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필자 외에 다수의 법관들도 비슷한 의견이었기에 현재는 다수의 판례를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는 행위에 대하여 폭넓게 공범으로 인정하는 법리가 확립되고 법원의 양형기준도 더 강화되었다.

그런데 2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형사재판부에 있는 동안 보이스피싱 범죄 재판은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법원의 형사재판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상당한 기간에 걸쳐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위험성과 그 사회적 폐해, 나아가 여러 범행 수법을 알리는 수많은 보도와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보이스피싱 범죄가 계속 성행하고 있다면, 이제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처벌과 예방에 중점을 두는 것보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발생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원인을 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다.

다양한 보이스피싱 수법이 있지만, 이미 많은 대출을 받았거나 신용상태가 좋지 못하여 추가적인 대출을 받을 수 없는 피해자에게 추가대출이 가능한 방법이 있다고 속이면서 피해자의 예금을 다른 계좌로 이체하도록 하거나 현금으로 인출하도록 하여 이를 가로채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그 수법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이스피싱 조직원이나 피해자 모두 정상적으로는 추가 대출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편법을 통한 추가 대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피해자를 현혹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의 교묘한 속임수가 범죄의 핵심이고, 절박하거나 급박한 상황에 내몰린 피해자가 편법 대출의 유혹에 흔들리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주목할 점은, 그동안 처벌을 강화하고 많은 관련 보도와 홍보가 있었음에도, 왜 여전히 보이스피싱 수법에 걸려드는 피해자가 늘어 가는가에 대한 해답이 어쩌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 사이 은연중에 퍼져 있는 편법에 대한 공감대일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법과 재판은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 중 최소한의 부분에 불과하다. 원칙적·공식적으로는 허용되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이른바 ‘지인 찬스’를 쓰고 브로커를 통해 비용을 지불하면 규정을 우회하여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가능해진다는 인식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팽배한 상태인 것은 아닌지, 신용상태가 좋지 않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편법 대출이 아니면 기댈 곳이 없을 정도로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상태는 아닌지, 먼저 돌아보지 않는다면 법과 처벌의 강화만으로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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