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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초점]영월이 써 내려간 ‘영화적 기적’, ‘새로운 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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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광열 (재)영월산업진흥원장

◇엄광열 대표

500년 전 영월 청령포란 유배지에서 어린 왕이 흘린 눈물을 기억하는가. 긴 시간 그 눈물은 ‘비극’이라는 이름 아래 차갑게 침묵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6년,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그 해묵은 침묵을 깨웠다. 

1,650만 관객이 스크린 속 이야기에 함께 울었고, 그 여운은 이제 관객들을 직접 영월의 굽이진 물길 앞으로 불러모으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영화가 흥행했다’는 기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버려진 왕의 시신을 거두었던 민초 엄흥도의 충절이, 어떻게 오늘날 영월의 골목 상권을 살리고 젊은 세대의 발길을 이끄는 ‘경제적 기적’으로 변모했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잘 만든 콘텐츠 하나가 도시의 운명을 바꾼 사례는 이미 국내외에서 증명된 바 있다. 강릉 주문진은 드라마 ‘도깨비’ 방영 이후 평범한 방파제가 전 세계 팬들이 줄을 서는 ‘성지’로 탈바꿈하며 강릉을 젊은 층의 필수 여행지로 재정의했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배경지 포항 청하와 구룡포가 조용한 어촌에서 연간 700만 명이 찾는 관광 메카로 거듭나고, 뉴질랜드가 영화 ‘반지의 제왕’ 속 ‘호비튼’ 세트장을 통해 매년 수조 원의 관광 수입을 올리는 ‘미들 어스(Middle-earth)’로 재탄생한 사례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이처럼 역사적 서사와 영화적 상상력을 결합해 강력한 관광 동력을 확보한 영월 또한, 이제 세계적인 ‘스크린 투어리즘’의 성공 대열에 당당히 합류했다.

변화는 수치로 명확히 드러난다. 영화 개봉 이후 영월군을 찾는 발길은 전년 대비 140% 이상 급증했고, 특히 2030 세대가 전체 방문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주말 상권 매출은 70% 가까이 상승하며 숙박업과 음식업은 물론 서부시장, 중앙시장, 덕포시장에서 지역 특산품 시장까지 훈풍이 불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관광객 증가를 넘어 역사와 콘텐츠가 결합된 지역 경제 활성화 모델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종과 엄흥도라는 고유한 역사가 미디어라는 날개를 달고 현대인의 가슴속 ‘의리’와 ‘인간애’를 건드린 결과물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관심이 가져온 교통 혼잡과 생활 환경의 변화는 해결해야 할 숙제다. 강릉이 ‘도깨비’ 이후 커피 거리와 연계된 모델을 구축했듯, 영월 역시 이 뜨거운 관심을 지속 가능한 미래의 가치로 승화시키는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일회성 구경거리에 그치지 않고, 일회성 구경거리에 그치지 않고, 영화가 남긴 찰나의 감동을 지역의 단단한 문화적 토양으로 치밀하게 이식해 나갈 때, 영월의 기적은 비로소 그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스크린 속 이야기가 지역민의 삶을 바꾸고, 500년 전의 눈물을 오늘의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은 이제 시작이다. 스크린 속 이야기가 지역민의 삶을 바꾸고, 500년 전의 눈물을 오늘의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은 이제 시작이다. 한 사람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엄흥도의 숭고한 결의가 이제 지역과 공존하는 상생의 철학으로 승화되어, 영월의 미래를 비추는 영속적인 이정표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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