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풍경이 품은 깊은 침묵에 귀를 기울인 송삼용 시인의 시집 ‘눈이 길을 지우는 방식’이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눈과 바다, 참나무, 장독대, ‘덴마(작은 목선)’ 등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대상들로 채워져 있다. 시인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거나 서둘러 의미를 추출하는 대신, 사물을 오래 바라보며 어떤 일이 지나간 뒤 남겨진 ‘고요’의 자리를 탐구한다.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표제작 ‘눈이 길을 지우는 방식’에 대해 “눈이 내리며 길(이동의 자취)과 말(세계의 질서화)이 함께 지워지는 순간, 방향 감각과 의미 감각이 중단된 자리에서 비로소 다른 차원의 감각이 열린다”고 평하며, 인간의 언어와 습관이 잠시 무력해진 곳에서 발견되는 고요의 가능성을 짚었다.
또 시집 전반에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거친 바다 위에서 “시퍼렇게 날 세운 물살에 내일을 심으며 온몸으로 시를 쓴다”는 시인의 굳건한 삶의 태도와 도전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금용 시인은 추천평을 통해 “가볍게 지워지는 흰 눈발 속에서도 본연의 ‘나’가 의기롭게 서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며 작품에 내재된 시인의 철학을 높이 평가했다. 쏠트라인 刊, 175쪽, 1만3,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