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선거 기간에 지하철로 출근하던 지인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지하철 개찰구 앞이 온통 파란색 후보 선거운동원으로 가득해서 흠씬 놀랐다는 것이다. 그가 사는 곳은 서울 서초구, 보수당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한다고 여겨질 만큼 민주당이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 지역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기간에는 분위기가 좀 달랐나 보다. 민주당 소속 구청장 후보는 물론 구의원 시의원 후보의 운동원들이 한데 모여 집중 유세를 벌였다. 열세인 지역을 그만큼 열심히 누볐다 하니 대단한 열정임이 분명하지만, 지인의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 저러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 지지율 좀 높다고 해서 마치 점령군마냥 한곳에 모여 있으면 보수 성향의 시민들에게 오히려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겠냐는 우려였다. 정말 간절하다면 한데 모여 세를 과시하지 말고, 거꾸로 불쌍한 척. 간절한 척이라도 해야 보수 표심을 누그러뜨리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선거 결과를 보면서 당시 나눈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이기고도 진 선거’라는 평가가 따라붙은 이유, 결국 표심을 향한 ‘간절함’이 전부였다. 당선 지역과 당선자 수만 놓고 본다면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승자임이 틀림없다. 서울의 막판 역전패, 경기 평택을과 부산 북갑의 아쉬운 패배를 고려하더라도 선거에서 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의외의 선전에 들뜬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은 깊은 실의에 빠져 있다. 절망 대신 희망을 말하는 패자와 승리에 환호하지 못하는 승자, 이 역설적인 상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방심과 착각 : 민주당은 대통령 인기에 편승하는 데 머물렀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과 당 지지율이 격차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민심을 착각했다. 당 지도부는 유권자를 향해 레이더를 돌려 민심의 좌표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그랬다면 보수 결집과 중도 이탈을 불러올 조작 기소 특검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4년 함박눈 내리던 겨울밤, 윤석열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농성하던 ‘키세스 시민단’, 경찰에 막힌 농민 시위대를 지키겠다며 서울 남태령으로 달려간 2030 여성들도 평범한 생활인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했다.
◇ 오만과 편견 : 유권자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부 권력 다툼에만 몰두했다. 이른바 ABC 이론을 내세우며 중도보수 성향을 가진 뉴이재명 세력을 배척했다. 평택을 재선거에서는 이미 승리를 맡아놓은 사람처럼 조국혁신당과 민주당 후보가 추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젊은층 유권자의 눈에는 이 모습이 얼마나 위선으로 보였을까.
◇ 둔감과 무시 : 민주당은 상대의 전략을 파악하는 데도 둔감했다. 선거 막판 참패가 예상되자 보수 진영은 다급해졌다. 극우 색채가 강한 장동혁 대표 대신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감옥 갔다 온 사람’이라며 이들의 과거사를 부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번지수가 틀린 공격이었다. 오죽했으면 앞으로 나섰을 두 전직 대통령의 SOS 구조 요청에 보수 지지자뿐 아니라 중도층까지도 반응했다. 이재명 정부의 독주를 견제해 달라는 보수층의 절박한 신호에 민주당의 오만한 이미지가 겹치면서 선거 막판 표심이 출렁였지만 민주당은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지피지기, <손자병법>에서 백전백승의 비법으로 언급하는 말이다.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는 ‘지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지기’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 변용한다면 ‘너 자신을 알라’쯤 된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피도 지기도 모두 실패했다. To be or not to be. 셰익스피어 권위자인 설준규 교수의 번역대로라면 ‘이대로냐 아니냐’다. 선거는 끝났지만 유권자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