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300만
기고

[문화단상]바우와 피란이가 살던 고향

읽어주는 뉴스

한필수 전 원주MBC 보도부장

한필수 전 원주MBC 보도부장

수건 한 장 질끈 매고 뒷밭으로 향하던 어머니가 호미 하나를 봉당으로 휙 던진다. 어제 못 끝낸 옥수수밭 김매기를 가자는 신호였다. 한낮의 열기로 옥수수밭은 후덥지근했다. 칼날 같은 옥수수 잎이 살갗을 스치는가 싶은데 어깻죽지에서 벌건 피가 사정없이 흘렀다. “엄마, 나, 일 안 해!” 호미를 밭둑에 팽개치고는 씩씩거리며 후미진 옥수수밭을 나선다. 어머니가 맨 하늘에 대고 쏘아붙인다. “에–이 치악산 호랭이가 물어갈 놈!” 소꼴을 베고 콩밭을 매고 쇠죽을 쑤는 일은 중학교가 있는 원주로 유학을 떠나고서야 졸업이었다. 그때 나이 열두 살이었다.

오늘은 어린 시절의 고향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족대를 들고 치악산 자락의 주천강으로 향한다. 물고기를 잡아 천렵할 요량이다. 물살 아래에 족대를 대고 위에서 지렛대로 들썩이며 흙물을 일으키면 물고기들이 이 무슨 변고인가 싶어 튀어나오고 물살 따라 족대 안으로 들어온다. 얼룩무늬 꺽지에 퉁가리가 걸려들고 참종개, 쉬리, 동자개, 미유기, 돌고기 등등, 씨알 굵은 물고기가 금세 두어 사발 잡힌다.

친구는 네 부류가 있는 것 같다. 태어나 철들며 고향 친구를 자연스럽게 사귀고 중학과 고교를 다니며 친구를 만난다. 대학 시절에 새로운 친구와 어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다른 사람과 만나 친구가 된다. 어릴 적 친구에게서 더 애틋한 정을 느끼는 것은 시골 태생이라서다. 1986년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해에 시작된 고향 벗들과의 모임인데 벌써 40년째 이어지고 있다. 초여름에 한 번, 벌초 때 한 번, 일 년에 두 번 만나지만 누구 한 사람 거르는 이 없이 다 모인다.

‘피란이’와 ‘바우’라는 친구가 있었다. 두 살 더 나이 들어 입학한 동급생은 피난 시절에 태어났다고 피란이라 불렀고 지금의 윤종은 오랫동안 바우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친구다. 굳이 세련되지 않은 이름을 써야 했을까 싶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아득했던 그 시절에는 유아의 생존율이 지금 같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대충 부르다 서너 살이 될 무렵이 되면 이제 죽을 팔자는 아닌가 싶단 확신으로 제대로 된 이름인 승구가 되고 윤종이 되어 호적에 오를 수 있었다.

구수한 민물매운탕을 가운데 두고 소주잔을 기울인다. 장마진 물로 학교에 못 가던 날에 위험을 무릅쓰고 철교를 건넌 야속한 친구가 누구였냐고 다그치는데 피란이가 히죽 웃으며 손을 든다. 눈보라에 길을 헤매다 도깨비에 홀린 친구는 바우였다. 이른 가을날에 풋보리를 불에 익혀 먹고 청산가리가 든 콩으로 꿩을 잡던 옛 시절의 전설 같은 얘기를 소환하며 밤을 지새웠다.

며칠 전,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신청했다. 서울의 친구는 10만 원을 받았는데 난 비수도권에 산다는 이유로 5만 원을 더 얹어 15만 원을 받았다. 멀리 남녘에 사는 친구는 25만 원을 받았단다. 지난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원주의 신림초등학교가 올해 전교생이 27명이란다. 1950년대 천여 명에 달하던 학교였다. 햇살 고운 논둑과 밭두렁으로 길게 이어지던 어린 시절의 등굣길 친구들이 어른거리는 아침이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