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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주춧돌이 부실하면 집 무너진다

주현종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

연필로 집을 그려보자. 보통은 지붕부터 그려 나갈 것이다. 그러나 한 노인 목수가 땅바닥에 나무 막대기로 그린 집은 주춧돌부터 시작해 기둥, 서까래… 마지막으로 지붕을 그렸다. 고(故)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등장하는 일화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집 그림은 현실의 집 짓는 순서와 같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대한민국의 안전 또한 다르지 않다. 기초에 작은 주춧돌을 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안전의 기본이며, 나아가 안전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최근 유치원 건물 붕괴사고, KT 건물 화재, 경기 고양시 온수관 파열사고, 유류저장소 화재 등의 참사에 안전불감증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안전의 주춧돌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안전불감증은 건설 현장에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비계(가시설물) 최상부 안전난간 미설치에서부터 가장 기본적인 안전모, 안전고리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공사를 진행하는 등 기본수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 발생으로 이어져 노동자들의 생명이 희생되고 있다.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은 관내 중앙부처 및 지자체와 합동으로 건설 현장 안전불감증 해소를 위해 일련의 홍보와 계도, 교육을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권 건설 재해율은 2014년 이후 전국 최하위 수준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건설재해를 저감시키기 위해서는 건설 현장을 바라보는 시각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더 이상 온화한 태도로 현장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철저한 단속을 통해 20여년 전 연간 1만명에 달하던 교통사고 사망자를 반으로 줄인 '교통생명 5000운동'을 교훈 삼아 계도 점검, 교육, 캠페인 이외에도 단속 확대, 점검 강화, 엄중한 처벌 등 법령 위반사례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견지함으로써 부실·안전에 대한 건설 관계자의 경각심을 단단히 일깨울 필요가 있다.

원주청은 건설 현장의 위험을 모니터링하는 건설안전지키미 제도를 도입해 건설 현장 안전사고 감시망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달 지자체·관계기관 합동 건설안전 합동캠페인을 강원권 건설현장 전역에서 실시하고 있다. 또한 안전취약 3대 사업장 중점 관리 및 건설 현장 직접 점검을 대폭 확대하고 기관장을 비롯한 지휘부의 불시 현장점검을 실시하는 등 안전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기본적인 안전수칙 위반, 품질불량·부실시공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아가 지자체 건설부서의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하고자 건설 현장의 최일선에서 건설재해 시 긴급 대응을 위해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해 나가는 등 즉각적인 안전·재난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사상누각(沙上閣)'이라는 말처럼 기초가 부실하면 곧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이제 연필로 집을 그리는 탁상공론(卓上空論)을 경계하고, 실제 현장과 경험을 중시해 안전의 주춧돌을 세우는 기본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안전으로부터의 필자의 사색'이다. 오늘의 작은 주춧돌인 기본을 지키면 내일의 소중한 생명의 주춧돌이 돼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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