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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금요칼럼]독립영화를 지킨 피·땀·눈물

김만재 강릉원주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열리기 직전, 8월 초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하 신영극장)에 가면 가슴 찡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강릉씨네마떼끄 회원들과 스태프들은 커피 드리퍼를 테이블 위에 잔뜩 늘어놓고 아마도 여기저기서 함께 빌렸음 직한 작은 포트로 물을 데워 드립 커피를 만든다. 커피도시 강릉에 사는 그들은 삭신이 쑤실지언정 대충 인스턴트 커피로 타협할 수 없다.

신영극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내 친구는 영화제 상징 중 하나인 쑥불을 준비하기 위해 어디 가면 쑥을 캘 수 있는지, 농사짓는 아버지로부터 정보를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해 차 없는 스태프들을 위해 현장까지 출동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또한 영화제 기간에 칵테일을 판매하고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 연례행사를 몇 년째 하고 있다.

지난해는 20주년이라는 특별한 해였기 때문에 영화제 지원 예산이 조금 늘었다. 하지만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정동진독립영화제:20주년 에세이집' 발간과 영화수업 외에는 딱히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정동진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제까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나 낮은 가격에 일해 줬던 사람들에게 조금은 정상적으로 지불했기 때문에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는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답했다. 그 덕에 이제는 어느덧 중년이 된 강릉씨네마떼끄 회원들 또한 지난해만큼은 밤늦도록 커피 내리는 수작업을 하지 않아도 됐다.

이처럼 강릉의 독립영화판에 있는 이들의 '피·땀·눈물' 덕분에 나는 중소도시에서 꽤 괜찮은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 한때 신영극장이 문을 닫은 적이 있는데, 그 기간 동안 내가 당연시 여겼던 것을 상실했을 때 삶이 얼마나 불편해질 수 있는가를 깨달았다. 결국 신영극장은 강릉시가 5,000만원을 보조하면서 재개관됐지만 시 보조금은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예산 편성 철만 되면 불안해진다.

강릉에는 영화운동에 매진한 몇 사람들 덕분에 정동진독립영화제, 신영극장, 강릉시영상미디어센터를 축으로 해 꽤 괜찮은 독립영화 생태계가 조성돼 있다. 목돈이 들어가는 영상 기자재라도 구입할 수 있다면 일자리 창출이나 틈새시장 공략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예산은 늘 부족하고, 자신의 문화적 취향에 기반해 예산 확대를 주장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강릉시에서 '제1회 강릉 국제문학영화제'를 개최한단다. 아니, 그럴 예산이 있단다. 문학영화제라니? 상상력의 보고인 문학과 영화, 두 영역을 사용한 고유명사는 신기하게도 나의 뇌를 전혀 자극하지 않는다.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국내에서 열리는(혹은 열렸던) 영화제만 보더라도 158개나 되는 것으로 검색되는데, 최종 예산은 얼마가 될지 모르겠으나 신문에 보도된 10억원으로 국제영화제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이 영화제가 “정동진독립영화제 및 인권영화제에도 도움을 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발상은 신묘하기까지 하다.

이왕 세금 쓰는 일, 진정으로 잘되길 빈다. 강릉시가 영화에도 관심이 있다니 반갑다. 다만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독립영화계에 조금만 더 예산을 투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도 한번쯤 상상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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