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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발언대]신언서판(身言書判)

우리나라 살림을 꾸려 나갈 선량들을 선출하는 총선이 코앞이다. 이에 불현듯 떠오르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고대 당나라 때부터 정계에 나서는 입지자나 관리를 기용하는 데 적절하게 활용돼 온 것으로 알려진 문제의 사자성어는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 지망생들에게 대명사로 따라붙어 선거철마다 심심찮게 회자(膾炙)되던 어휘다. 그만큼 이 사자성어가 갖는 의미와 그 힘은 컸다고 할 수 있다.

실제 필자가 초·중·고교 시절만 해도 이 사자성어는 정치 지망생들이 출사표를 던질 때 어김없이 따라붙어 인물을 평가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실상 6·25전쟁을 전후한 시절 문제의 사자성어는 어려운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에게 조금은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론 친근감을 갖게 한 글귀이기도 하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문자 그대로다. 국민을 대표하며 일을 하려고 나서는 입지자들은 우선적으로 인물 면에서 좀 남달라야겠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오종종하니 '쪼다' 같은 모양새보다는 외모 면에서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그럴듯한 인물(몸·身)이어야 좋지 않겠냐는 것이 그 첫 번째다.

이에 언변 또한 남에게 뒤져서는 안된다는 것(말씀·言)이다. 그리고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글줄(쓸 ·書)이나 좀 할 줄 아는 자, 시쳇말로 책가방 끈이 길어야 입씨름 면에서라도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속에 든 것 없는 인물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리라.

이 같은 바탕하에 매사 지역 살림을 이끌어 감에 있어 강력하면서도 정확한 판단력(판가름할·判)을 갖고 있어야 명실상부한 지역 일꾼이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내용의 전부다.

이렇듯 지역사회의 일꾼을 선출할 때마다 어쩌면 낭만과 운치까지 곁들여 모두의 입에서 오르내리던 사자성어인 '신언서판'.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작금의 정치 행태는 귀에 익은 사자성어를 포말 속으로 사라지게 한 것만 같아 일말의 아쉬움과 씁쓰레함을 금치 못하게 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 제철을 만난 사자성어인데도 누구하나 관심 갖는 이 없이 허망스레 날을 맞고 있다. 야속한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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