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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물폭탄 덮친 강원]“27년 살며 수해만 3번째…빗소리만 들어도 끔찍”

철원 이길리 주민들

“장마철마다 불안감” 깊은 한숨

한 달 전 귀농한 60대 꿈 산산조각

76세 할머니는 “복구할 힘 없어”

“이제는 빗소리만 들어도 경기가 날 지경입니다.”

1996년과 1999년에 이어 또다시 침수 피해를 입은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주민들은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6일 철원군 오덕초교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만난 주민 홍모(69)씨는 장마철마다 느끼는 불안감에 27년을 살았던 이곳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는 “벌써 세 번의 수해를 겪었다”며 “이제 더 이상 빗소리에 불안하기도 싫고 이 동네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홍씨는 물이 빠진 뒤 방문했던 마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길리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박영치(79)씨는 1965년에도 사람 가슴 높이만큼 침수됐던 기억을 끄집어 냈다. 박씨는 “어른들이 이 마을은 30년 주기로 물에 잠긴다고 했었는데 지금 또 터진 것을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며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고 허탈해했다.

한 달 전 이길리로 귀농한 60대 여성 김모씨도 망연자실했다. 지난해 퇴직하고 마침 남편의 새 직장인 철원에 새 터전을 잡으면서 부농의 꿈이 영글기도 전에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사람들이 60세가 넘어서도 새 일자리를 구한 남편을 축하해 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직도 침수 피해가 실감 나지 않는다”며 “복구가 된다 해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기운이 없다”고 하거나 “말해도 바뀌는 것이 없는데 말해서 뭐하느냐”고 하는 등 의욕을 잃은 모습이 역력했다.

세번의 침수를 모두 겪었다는 박은예(여·76)씨는 “1990년대 침수 때는 젊었으니 그나마 괜찮았는데, 지금은 복구할 힘이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오전 대피소의 주민들을 찾은 최문순 지사는 “중앙정부, 철원군과 협의해 최대한 빨리 복구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 지사의 손을 꼭 잡은 주민들의 눈가에는 일상 복귀에 대한 절실함이 눈물로 맺혀 있는 듯했다.

철원=권순찬기자 sc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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