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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1,400년 역사만큼 수난 겪어 머리·상반신 빼고 크게 훼손

89. 동해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동해의 삼화사는 600년대 초반, 신라의 승려 자장이 창건한 절이다. 자장 스님이 당나라에서 유학 후 돌아와 두타산에 이르러 흑련대를 창건했다. 이 흑련대가 후에 삼화사다. 무려 14,00년의 역사를 지녔는데 긴 역사만큼이나 수난도 많은 사찰이다. 화재와 중건이 계속된 이 사찰은 1907년 의병들이 일어나 일제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완전 소실되는 아픔을 겪는다. 삼화사에 모셔진 철조노사나불좌상 역시 발견 당시 머리와 상반신을 제외하고는 크게 훼손됐다. 1997년에 원래 모습을 찾고자 철조노사나불좌상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철원의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모델링해 하반신과 대좌를 복원했다.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은 1996년 정밀 조사를 진행하던 중 불상 뒷면에 좌우가 뒤집혀 주조된 명문이 발견됐다. 이 명문은 1행에 17자씩, 세로 10행에 걸쳐 남아있고 140자 정도가 판독이 가능했다. 내용은 화엄종과 관련된 사찰에서 결언 스님이 중심이 돼 지역민들의 시주로 노사나불을 조성했다고 돼 있었다. 당시 조사로 인해 '노사나불'이라는 부처님의 이름을 찾은 것과 결언 스님과 지역민들이 함께 만든 부처님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당시까지 이두의 사용과 한자를 국어 어순에 맞춰 배열하는 문장 등으로 당시 국어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복원을 거친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은 1998년 12월18일 보물 제1292호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삼화사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공양왕의 자리를 '양위' 받은 이성계는 고려를 폐하고 조선을 세웠으며 공양왕을 비롯한 왕씨 일가를 강화와 삼척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이후 왕씨를 살려두면 후환이 될 것이라는 조정 대신들의 이야기에 이성계는 결국 왕씨 일가를 몰살시킨다. 태조 이성계는 수개월 후 공양왕이 묻혀 있는 삼척의 삼화사에서 수륙재를 열도록 한다. 수륙재는 원통하게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불교 의식이다. 자신이 살해한 왕씨들, 특히 공양왕의 명복을 빌고자 했다.

삼화사 수륙재는 의례절차가 자세히 담긴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덕주사본과 갑사본이 발견되면서 2005년부터 재현됐다. 2013년 12월31일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됐다.

김대호기자 mantough@kwnews.co.kr·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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