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 23일 정선 고한 정동광업소 매몰사고
1992년 9월23일 아침
거친 숨소리에 맞춰 헤드 랜턴 불빛이 위 아래로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시커먼 갱속에서 탄을 캐 광차에 실었다. 암흑속의 정적을 깨뜨리고 “물이 나온다”, “물이 나와” 동료의 고함이 들리자 마자 갑자기 광차가 막장 안으로 밀려 들었다. 큰일났구나 직감하며 막장안으로 몸을 피했다. 눈 앞에 여러 광차 중에 1냥만 남겨두고 모두 매몰됐다.
옆에서 작업하던 동료들이 사라졌다. 이제 죽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생존자가 더 있을거야 라는 생각이 들자 바로 옆 산소 파이프를 경석으로 내리쳤다. 쨍쟁 금속 울림은 이내 검정 블랙홀으로 사라져버렸다. 신호음이 돌아오지 않자 동료들의 생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내와 아들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구조대가 틀립없이 올거라는 확신을 갖고 장기전을 준비했다. 운반갱으로 피신 한 후 광차와 막장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고무호스를 손으로 막아 공기의 양을 조절해 기다렸다.
초조한 마음을 버리기 위해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배고픔도 잊은 채 웅크리고 장시간 있다 보니 마비증세가 왔다. 좁은 공간에 맞게 팔다리 운동으로 근육을 몸을 풀었다. 이틀이 지나가자 기운이 빠져 이마저도 그만뒀다. 화약상자를 깔고 안전모를 쓴채 살아야한다는 생각만 하고 버텼다. 3일이 지나자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나 여기 있어” 소리치며 자신을 구하러 온 동료들의 얼싸 않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 1992년 9월23일 정선군 고한읍 고한2리 정동광업소 죽탄매몰사고로 8명의 광부들이 갱속에 갇혔다.
이 사고로 매몰된 8명의 광부 중에 유일하게 김주철씨(34, 축전차운전공)는 사고 발생 64시간지나 구조됐다. 눈을 가리고 사고 마스크를 쓴 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북동원보건원으로 이송됐다. 가족을 얼굴을 대면하는 순간 이제는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탄광 매몰사고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9월14일 태백시 장성광업소 지하 갱도 75m 지점에서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가 광부 5명과 함께 들어가 작업중지 조치를 하던 중 죽탄 약 150톤 가량이 쏟아졌다. 이에 작업자 5명은 긴급대피했으나 A씨는 죽탄에 휩쓸린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탄광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반복적인 희생이 이어진 후 반세기가 지나서야 중대재해 처벌법이 올해 1월27일 시행됐다. 이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하고 있다.
1970년~80년대 석탄광 종사자들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주역으로 칭송 받아왔다. 국가 기간산업의 최일선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국가 경제의 중심축으로 일해 왔다. 석탄 매장량이 전국의 70%를 차지한 강원도는 그 근대화 산업 주역들이 몰려와 나라 산림을 지탱하는 역군으로 활약했다. 전쟁터에서 산화한 애국 장병들처럼 이곳에서 젊음과 생명을 바친 석탄광 노동자도 그에 걸맞는 대우가 필요하다. 그동안 정부수립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내 여러 광산에서 1,700명이 넘는 탄광노동자들이 희생됐다. 그리움은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지 않고 더욱 선명해지는 나이테와 같다. 이제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사건을 양지로 옮겨와 사람들의 희생과 가치의 무게를 다시 측량할 때다.
김남덕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