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진주박물관은 대한민국 현대건축의 선구자 김수근 건축가의 건축 철학이 스며든 공간이다.
임진왜란의 역사와 진주의 문화가 겹겹이 담긴 진주성 안.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이 박물관은 조용히 숨어 있는 듯하지만, 한 발씩 다가갈수록 그 독창적인 건축미와 공간의 깊이가 서서히 드러난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남강이 감싸 안은 이곳은 과거와 현재, 건축과 역사가 만나는 특별한 장소다.

■스며들 듯 세워진 건축, 과거와 현재를 품은 공간=국립진주박물관은 1984년 개관 당시 국내 일곱 번째 국립박물관으로, 경남도 최초의 국립박물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이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진주성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건축’이라는 데 있다.
김수근은 설계 초기부터 진주성의 전통성과 지형적 특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건축의 기능을 담아낼 방법을 고민했다. 진주성 내 70평 규모의 촉석루를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1700평이라는 규모의 박물관 기능을 충분히 담아내는 일이었다.
실제로 박물관은 낮은 구릉 지대에 자연스럽게 파묻히듯 설계돼 있어, 방문객은 건물에 가까이 다가설 때까지 그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지점을 지나면,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고요히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외부는 대지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개의 단으로 구성하고, 진입부 전면에는 넓은 광장을 조성해 폐쇄적인 내부 기능을 보조하고 있다.
건물의 외관은 한옥 지붕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중첩된 지붕선으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형태의 지붕이 합쳐져서 장관을 이루는 우리의 전통마을 이미지를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
외벽은 진주산 청회색 돌을 사용해 진주성 내 다른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건물은 단일 구조지만 중심 공간을 두고 전시실, 사무실, 직원 식당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공간 구성의 치밀함이 더욱 돋보인다. 국립진주박물관은 단일 건물로 설계됐기 때문에 커다란 중심 공간이 설정된다. 이것은 2개 층이 개방된 형식으로, 이를 통해 전체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했다. 전시 공간에는 경사형 램프가 설치되어 1층에서 2층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관람자는 위로 올라가 유물을 감상하고 다시 다른 램프를 따라 내려오며 전시를 이어갈 수 있다. 이 回자형 동선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관람자에게 공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건축이다.
빛의 사용도 눈에 띈다. 박물관은 일반적으로 유물 보존을 위해 인공 조명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중정 부분을 자연광으로 처리하고, 지붕과 지붕이 만나는 애매한 경계에 천창을 설치함으로써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였다.
김수근이 1980년에 그린 내부공간을 위한 단면 스케치들을 살펴보면, 내부계단에 의한 레벨차가 불러 일으키는 공간적인 느낌과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의 관계가 중점적으로 탐구됐음을 알 수 있다.

박물관 한편에 마련돼 있는 휴게실도 공간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마루에 앉아 배롱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정원과 청회색의 돌담을 바라보며휴식을 취하는 것도 박물관 공간을 즐기는 또하나의 묘미다.
이처럼 공간 그 자체가 하나의 건축적 메시지를 품고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은 전시 콘텐츠 또한 그 맥락에 맞게 구성돼 있다.

■임진왜란 역사, 경남 문화유산 조명= 국립진주박물관은 개관 당시에는 경남을 중심으로 성장·발전했던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대표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1998년 ‘가야문화 연구’ 기능은 국립김해박물관으로 옮겨지면서 국립진주박물관은 경남 서부지역의 역사 문화와 임진왜란을 전시 중심 주제로 하는 ‘임진왜란 특성화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현재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 관련 문화재를 모아 전시하고 각종 연구 사업을 통해 국제 전쟁으로서 임진왜란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임진왜란실은 1592년 일본군의 대규모 침입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전쟁의 발발 △일본군의 전략 △조선의 대응(의병과 수군의 활약) △명군의 참전 △정유재란과 종전 등의 주제로 전쟁의 큰 흐름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제1·2차 진주성 전투가 벌어졌던 진주성의 역사도 살펴볼 수 있다.
역사문화홀은 경남지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과 역사 도서, 휴식 공간이 어우러진 복합 전시 공간으로, 박물관 본연의 기능을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체감하게 한다.

두암실에서는 두암 김용두 선생이 일본에서 수집해 기증한 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 도자기와 서화, 공예품 등 총 190점의 기증품 가운데는 보물로 지정된 ‘소상팔경도’(보물 제1864호), ‘정조어필’(보물 제1632-1호) 등도 포함돼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통일신라 양식의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국보 제105호)이 전시돼 있다. 상층 기단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여덟 신장이, 1층 탑신에는 네 명의 보살이 새겨져 있다. 한 석탑에 신장과 보살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9세기 통일신라 석탑 양식의 특징으로, 불교미술의 높은 수준과 뛰어난 조각 기술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3D 입체영상관, 승자총통 체험실, 어린이 체험 전시실 등 다양한 교육 및 참여형 콘텐츠가 마련돼 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개관 40년 만인 지난해 누적 관람객 1200만명을 돌파했다. 진주성 유료 입장이라는 입지적 제약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수치다.
현재 박물관은 옛 진주역 철도부지로의 이전이 추진 중이며, 새 박물관은 2028년 말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현 박물관 건물의 향후 활용 방안은 아직 정해진 바 없으며, 현재 타당성 용역이 진행 중이다.

진주는 오래전부터 문화도시로 불려왔다. 그 중심에 선 진주성은 역사의 상흔을 간직하면서도, 지금은 시민들에게 휴식과 사색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이 같은 장소에 들어서면서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를 잇는 건축의 좋은 사례로 남았다.
성벽 안에 담긴 박물관은 이제 단순한 전시관이 아닌, 도시의 풍경이자 문화의 연장선으로 자리하고 있다. 돌담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조용하지만 깊게, 그렇게 김수근의 건축은 진주성 안에서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경남신문=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