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파독광부들의 고향, 삼척 도계…그들이 떠올린 도계는

30일 국내 마지막 국공영 삼척 도계광업소 폐광
63년부터 74년까지 파독광부 전원 도계서 훈련
“미국 서부개척시대처럼 청년들이 도계로 몰려”

◇1963년 국내 최초의 파독광부 1진

1963년 삼척 도계는 전례없는 인파로 붐볐다. 광부들의 파독 첫해인 당시 500명 모집에 전국에서 4만6,000명이 몰려들었다.

1963년부터 1974년까지 파독광부들은 모두 삼척 도계에서 최대 6주간 훈련했으며 1975년, 1976년, 1977년은 태백 장성훈련원에서 파독광부를 양성했다.

30일 폐광하는 삼척 도계광업소는 대부분의 파독광부들에게 고향인 셈이다.

◇도계광업소 부속 의료원에서 근무했던 파독간호사 김순복 재독강원도민회장

재독강원도민회장인 김순복(76)씨는 파독간호사이자 삼척 도계 출신이다. 김 회장은 삼척 도계광업소 부속 의료원의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파독을 결심했다.

김 회장은 “독일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고 전국 각지에서 청년들이 도계로 몰려들어 건강검진을 해준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동해 출신 파독광부 손재남

동해시 효가동 출신 손재남(83)씨는 묵호역에서 일하던 철도청 직원이었으나 어려운 시험을 뚫고 파독광부가 됐다. 손씨는 “당시 도계에서 체력검사를 보고 영어와 독일어도 많이 서툴지만 시험을 본 기억이 있다”면서 “광부는 8배 많은 돈을 받을 기회였기에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처럼 많은 젊은이가 도계광업소로 모여들던 시절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양양 출신 파독광부 김태석

북강원도 통천 출신으로 피난 이후 양양에 정착했던 파독광부 김태석(81)씨는 “파독광부는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쳤는데 이북에 가족이 있어 동기들보다 몇달 이상 늦게 출발했다”면서 당시 시대상을 증언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높은 실업률과 외화 부족, 농촌 붕괴 등에 시달렸다. 독일은 폭발적인 경제성장으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부합하며 1963년부터 인력송출이 시작됐다. 1977년까지 총 7,963명이 독일로 파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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