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확대경]안전의식이 위기에서 생명을 살린다.

김정기 원주소방서장

최근 화재 현장에서 발생한 소방공무원 순직 사고 소식을 뉴스로 접하면서 사무실 책상 한쪽에 보관하고 있던 근조 리본을 꺼내 왼쪽 가슴에 달았다. 謹弔(근조)라는 흰색 글씨가 새겨진 검은 리본을 보면서, 이름도 얼굴도 낯설지만 전라남도 한 바닷가 마을 어딘가에서 119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출동했던 두 분의 순직 동료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지난달 12일 오전 8시 45분께 전남 완도군 군외면의 한 수산물 가공업체 냉동창고 2개 동 중 연면적 3095㎡ 규모의 1개 동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한 작업자가 창고 1층 냉동고 주변에서 토치로 바닥 에폭시(페인트) 코팅을 녹이다 불을 낸 것이 원인이다.

불은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취약한 공장 건물의 특성과 당시 천장에 머물러 있던 기름 성분의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급격히 화세가 커졌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방공무원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공장 안에서 작업 중 화기 사용, 유증기 폭발, 화재 취약 구조물 등으로 인한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특히 이번 사고는 냉동창고와 같은 취약시설 내부에서 부적절한 작업 안전관리, 부주의한 화기 사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405,977건의 화재 중에서 약 절반에 해당하는 200,931건(49.5%)의 화재가 부주의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주의 요인을 조금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담배꽁초가 61,408건(30.6%)으로 가장 많고, 음식물 조리 중 32,771건(16.3%), 불씨 등 방치 26,956건(13.4%), 쓰레기 소각 25,928건(12.9%) 순이었다.

이를 통해 잠깐의 방심이나‘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무심코 하는 행동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던 대형 화재를 통해 수없이 보아왔다.

소방에서는 4월 순직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무인 소방 로봇을 도입해 전국적으로 배치하는 등 첨단 장비를 활용해 현장 대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대응체계를 고도화하고, 현장 지휘의 적정성을 확인해 제도 개선 등을 통해 다각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소방공무원들이 현장 활동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각종 대책도 중요하겠지만, 지난 10년간의 통계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처럼 시간이 좀 더 걸리고 조금의 불편함을 감내하더라도 시민들께서 부주의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안전은 화재 예방에만 머물지 않는다. 위급한 순간 행동할 수 있는 시민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마 전 원주에서는 한 초등학생이 아버지가 심정지로 쓰러진 상황에서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 상황센터의 안내에 따라 침착하게 심폐소생술을 이어가 아버지를 살렸던 구급출동이 있었다.

원주소방서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어린이를 초대해 표창장을 전달했다. 사춘기에 막 접어들어 사진을 찍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초등학교 6학년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들의 신속한 행동으로 아버지는 병원에서 무사히 호흡과 의식을 회복한 아름다운 소식도 있다.

전라남도 완도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방관 2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은 먹먹한 슬픔과 이곳 원주에서 아버지를 살린 한 어린이의 용감한 행동, 두 현실을 접하면서 우리의 안전의식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고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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