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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국립공원 산사에서 시작 된 등불, 마을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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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장

 

치악산 자락에 연등이 하나둘 내걸린다. 비로봉에서 남대봉으로 이어지는능선에 봄빛이 짙어질수록, 골짜기마다 자리 잡은 고찰의 풍경(風磬) 소리도 더없이 맑아진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치악산과 원주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깊은 불교문화의 결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원주는 통일신라시대 5소경(五小京) 가운데 하나인 북원경(北原京)이 자리했던 곳이다. 당시 5소경은 국교인 불교를 민중에게 포교하기 위한 핵심 거점이었다. 원주는 강을 따라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국가 정책에 따라 불교문화가 번성했던 도시였다. 그러한 이유로 한 때 치악산에만 ‘산사(山寺)’가 수십 곳에 이르렀다는 문헌기록이 있으나, 오늘날에는 여섯 곳의 전통사찰이 그 맥을 잇고 있다.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선(禪)을 닦기 위해 치악산의 깊은 산속에 지은 도량인 산사는 각 사찰마다 신비로운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신라 문무왕 8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구룡사(龜龍寺)는 아홉 마리 용이 살던 연못을 메워 세웠다는 전설을 품고 있으며, 입구에 세워진 황장금표(黃腸禁標)는 조선시대부터 이 일대의 송림이 왕실 보호림으로 엄격히 관리되었음을 증명한다. 또한 치악산은 붉은 단풍이 붉게 물든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의미로 본래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리었으나, ‘꿩의 보은’ 설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꿩 치(雉) 자를 쓰는 치악산(雉岳山)으로 바뀌었다. 보은 설화의 주인공인 사찰은 치악산 상원사(上院寺) 로 남대봉 아래 해발 1,200m 고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 밖에도 국가의 안녕을 빌었던 국형사(國亨寺)는 우리나라에 이름이 하나뿐인 사찰이며, 영원산성을 수호하기 위해 지어진 영원사(鴒原寺)는 지금도 나라를 위해 스러져 간 영혼들을 위로한다. 깎아지른 바위 위에 세워진 입석사(立石寺)는 비로봉을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관문으로 지금도 인기가 높고, 고즈넉한 풍경의 보문사(普門寺) 까지 저마다의 깊은 이야기를 품고 치악산의 산자락을 지키고 있다.

오늘날 원주는 공공기관 이전 등에 힘입어 인구 36만 명을 넘어선 강원권의 거점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성장의 이면에는 도심 집중 현상이 자리하며, 읍면 지역의 인구 감소는 여느 지방 도시와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학계와 행정에서는 거주지에 묶인 ‘정주인구’를 넘어 관광 등을 통해 일정 시간 머무르는 ‘생활인구’까지 포용하여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와 관련하여 생활인구 유입을 위해 치악산의 전통 사찰과 잘 보전되어 관리하고 있는 사찰림은 매우 훌륭한 관광 자원이자, 대안이라 생각한다. 절집의 새벽 예불과 산사음식을 체험하는 템플스테이, 사찰림을 따라 걷는 명상·치유 트레일 등은 단순한 일회성 방문을 넘어 사람과 지역을 깊이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치악산사무소는 영원사와 협력하여 야영객을 대상으로 소리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고, 구룡사에서 역사·문화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있다. 치악산의 전통사찰이 이어 온 불교문화가 지역의 향토자원과 결합되어 관광프로그램으로 활성화 된다면 침체 된 지역의 마을 곳곳을 환하게 비추는 등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통편의성과 관광자원의 개발 등 여러 가지 후속 조치가 필요하지만, 주민과 협력하여 각 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는 다면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원주가 보유한 불교문화 유산을 통해 더 다양하고 밝은 불빛이 각 마을까지 이어져 환하게 빛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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