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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의 바다 편지]낙산사, 파도, 그리고 무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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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 시인

낙산사는 예로부터 국내 최고의 ‘관음성지’로 손꼽혀왔습니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한 이래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관음보살의 따뜻한 미소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이라 불리기도 하는 관음보살은, 이 세상 아픈 이들이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즉시 달려와 보듬어주는 자비와 구원의 화신입니다. 그리하여 옛 어르신들은 힘들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호명하곤 했습니다.

지난 2005년 4월, 이 관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낙산사에 화마가 덮쳐 온 국민의 가슴이 타들어 갔습니다. 본전인 원통보전이 전소되고, 동종이 녹아내릴 정도였으니 화마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가도도 남음이 있습니다. 다행히 화재 이후 각계의 도움으로 복원이 잘 이루어져 지금은 번창했던 옛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저는 과분한 인연이 있어 화재 전 낙산사에서 일 년 이상 머문 적이 있었고, 화재 이후 삼 년여 동안 소식지를 만들며 낙산사 복원에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이 각별한 인연을 만들어 주신 분이 지난 2018년 부처님오신날 며칠 후에 입적하신 설악 무산 스님입니다. 스님은 필명으로 ‘조오현’이라는 속명을 쓰셨고, 오랫동안 ‘오현 스님’으로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스님은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를 비롯하여 낙산사, 백담사 등 대찰에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무산 스님은 만해 한용운 선양을 하면서 쇠락해가던 백담사를 일신한 스님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백담사 중창 이전 스님께서 몸과 마음으로 가장 많은 숨결을 남긴 곳은 바로 낙산사였습니다. 회주로 주석하며 국내 최다의 관음보살상이 봉안된 ‘보타전’과 ‘보타락’의 건립을 이끌었던 분도 무산 스님이었습니다. 지난 2023년, 스님의 입적 5주기를 맞아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낙산사 경내 해수관음상 앞에 스님을 기리는 부도탑과 동상을 모신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입니다. 이날 세워진 부도탑에는 스님께서 낙산사에 주석하실 때 읊은 오도송 「파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밤늦도록 불경을 보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천경(天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

제가 화재 전 낙산사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스님의 지휘로 중창을 시작하던 백담사에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제3교구 소식지를 만드는 심부름꾼으로 저를 데려갔는데 대규모 중창이 시작되던 백담사 ‘공사판’에 저를 머물게 하는 게 못내 안타까우셨는지 낙산사에 방을 하나 내주셨던 것입니다. 덕분에 낙산사에 짐을 풀고 백담사와 신흥사를 오가며 스님이 주신 일감을 수행했습니다. 낙산사에 방을 내주시며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낙산사만큼 좋은 절도 없다. 알았재.”

저는 낙산사에 머물면서 스님께서 왜 그런 상찬을 하셨는지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걸으면 마치 보드라운 솜털 위를 걷는 것 같았습니다. 관음보살에서 느껴지는 여성성, 특히 모성적인 아우라가 낙산사를 은은하게 휘감고 있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은 모성애라며, 아이가 울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그 아이가 지금 밥 달라고 우는지 똥 쌌다고 우는지 금방 알아차리고 달려가지 않냐고 되묻곤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음보살의 자비와 구원은 모성의 그것과 참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수행자이자 시인이셨던 스님은 빛나는 가르침과 뛰어난 시를 많이 남겼지만,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금 저에게는 “부처님 가르침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하면, 남의 눈에 눈물 흐르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알았재.”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스님께서 관음성지 낙산사에서 토해내신 오도송처럼 “천경(天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임을 안다면 남의 눈에 눈물 흐르게 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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