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家)에 화해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지난 3월 「왕자의 난」을 계기로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졌던 몽(夢)자 항렬 삼형제가 그룹 모태(母台)인 현대건설 살리기에 나섰다. 그룹 오너인 MH(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의장)와 대립해온 MK(현대차그룹 회장)와 MJ(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가 현대건설의 일부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건설 지원을 공식화하는데는 MK나 MJ진영이 공히 난색을 표한다. 이른바 「현금흐름(Cash Flow)」이 중시되는 경영조류 속에서 주주와 투자가들이 선뜻 호응할지가 미지수이기 때문. 특히 현실적 견제세력으로 등장한 소액주주들이 제동을 걸고나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표정이다. MK쪽의 한 관계자는 『뜻은 있지만 드러내놓고 도와주기는 힘든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MK와 MJ진영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가급적 「합리성」을 갖춘 투자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확실시된다. 형제기업이라는 정서적 차원을 넘어 철저한 기업논리로서 가능한 수단을 찾겠다는 것이다. 결국 「명분」과 「실리」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도가 깔린 셈이다. 금감위 관계자도 『통상적 경제협력관계만 복원돼도 현대건설 정상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MJ의 현대중공업이 건설 보유 중공업 지분(6.93%)을 1천50억원이라는 헐값(?)에 사들이기로 한 것이 단적인 예다. 경우에 따라 적대화될 수 있는 이 지분은 자사주 펀드에 편입될 예정이어서 계열분리 가속화와 함께 MJ의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가능하게 만든다. 영업실적이 호전된 현대정유 지분(4.59%) 인수도 합리적 투자라는 것이 현대중공측의 설명이다. MK측의 현대자동차도 현대아산 지분(10%) 450억원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장기과제로 북한 자동차조립 공장을 추진중인 현대차로서는 대북사업 창구인 현대아산 지분의 활용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것 같다.
다만 전환사채(800억원)는 회수 리스크가 크다는 점에서 MK와 MJ진영으로서는 인수가능성에 회의적이다. MK는 이날 간부회의에서 『공(公)과 사(私)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며 전환사채 매입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MJ쪽도 반응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부쪽 분위기로는 현대건설이 자구계획 진도에 따라 신용등급 상향조정이 예정돼있어 가능하다면 MK와 MJ진영이 인수하기를 희망하는 눈치여서 인수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MK-MH-MJ간 관계복원은 가족간 화합을 중시하는 정주영씨 일가의 가풍과 삼형제의 우의에서 찾는 시각이 많다. 특히 MK는 사실상 장자인데다 그룹회장을 지낸 인물이어서 모회사의 「몰락」을 그대로 방치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이다. MK는 사석에서 거듭 현대건설 등 그룹문제에 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MJ 역시 계열사간 지급보증 송사로 한때 MH와 등을 돌렸지만 그동안 암암리에 MK-MH간 갈등의 중재역할에 힘을 쏟아왔다.
MH쪽은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과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의 막후 역할이 컸다. 김위원장은 최근 기자들에게 『MK와 MJ를 직접 만나겠다』고 공언한데 이어 18일과 19일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경영진을 잇따라 만나 협조를 구했다. 김 사장은 지난 17일 MJ를 찾아 구원요청을 했다는 후문이다.
형제간 화해가능성으로 현대건설 자구노력에 차츰 힘이 붙는 양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