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풍처럼 둘러선 금병산을 바라보며 동남향으로 자리한 김도사(金都事)댁.
이 집 농토를 소작했던 마을 소작인들은 가을 수확이 6,000섬이라고도 했도, 7,000섬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대개는 ‘만석(萬石)’이라고 했다.
김도사의 아들인 김참봉이 장년이 되었지만 마을에서는 습관대로 김도사댁으로 불렀다.
그래서 김참봉부인 해산날이라고 하지 않고, 김도사 며느리 해산날이라고 했다.
이 김도사집 머슴들의 발걸음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어느덧 해는 중천에 솟아 있었다.
그리고 첫 아들이후 내리 다섯명의 딸만 낳았던 이 집 며느리가 옥동자를 낳았다.
그래서 이 소식은 마을에 순식간에 퍼졌고, 경사였다.
김유정은 청풍김씨(淸風金氏) 24세손.
아버지 김춘식(金春植·1873∼ 1915년)과 어머니 청송심씨(靑松沈氏) 팔남매(2남6녀)중 일곱째이자 차남이다.
김유정이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춘천 실레마을에 5대째, 120년간 살아온 집안이다.
외가인 청송심씨(靑松沈氏) 가문도 춘천 두룸실(지금의 학곡리)에 5대째 살아온 집안이었다.
김유정의 집안인 청풍김씨가 춘천에 정착한게된 내력은 강원일보 논설주간을 지낸 문학평론가 김영기씨가 1992년에 펴낸 ‘김유정(金裕貞)-그 문학과 생애(지문사 刊)’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이 사실들은 청풍김씨대종회보 편집위원장인 김유환(75)씨도 인정했다.
이를 토대로 김유정의 집안이 춘천에 뿌리를 내리게된 이력을 살펴보면 이렇다.
청풍김씨 20세손인 김유정의 고조 할아버지 김기순은 조선 정조(正祖)22년인 1799년에 태어나 헌종(憲宗)1년인 1835년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그의 묘를 실레마을 임좌(壬坐)에 썼다고 한다.
또한 김기순의 부인이자 김유정의 고조 할머니인 청송심씨(靑松沈氏)의 묘는 실레마을 과전골 임좌(壬坐)에 썼다.
김기순이 춘천에 정착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그가 살았던 시대로 보아 19세기초에 춘천부 실레마을에 낙향해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야 할 청풍김씨의 춘천 인연이 있다.
조선 18대 임금인 현종(顯宗)의 장인(丈人)이자 현종의 아내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아버지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1619 ∼ 1675년)의 묘가 춘천시 서면 안보1리 산 25-1번지에 있다.
김우명의 아버지인 김육(金堉)은 대동법(大同法)을 시행 주창한 실학(實學)의 선구자였다.
임금의 장인인 청풍부원군 김우명이 운명했을 때 지관(地官)들이 전국의 명당을 찾아나서 처음 묘자리를 정했던 곳이 실레마을이었다고 한다.
상여를 배에 싣고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던중 갑자기 불어닥친 돌개바람에 명정(銘旌)이 날아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관이 날아간 명정이 떨어진 지형을 살펴보니 권세와 부귀가 백대를 누릴 수 있는 곳이어서 그 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실레마을 좌봉 묘자리 정지작업이 중단된 사연이다.
청풍부원군 장례식때(1675년) 조정에서 보내준 장례도구가 고스란히 서면 안보1리 청풍부원군 묘역 입구 상여각에 보관돼 왔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20호인 이 상여는 청풍김씨 문중에서 2002년 국립춘천박물관 개관에 맞춰 기증함에 따라 이곳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서면 안보1리 청풍부원군 묘역은 강원도기념물 제20호로 지정돼 있다.
김유정의 9대 조상인 김우명의 넷째 손자 도택(道澤)은 통천(현 북강원)군수를 지냈고, 도택의 아들 성규(聖規)는 삼척도호부사를 지냈다.
성규의 아들 정묵(正默)은 이조참의를 지낸 인물.
그 정묵의 다섯째 막내아들이 기순(基恂)으로 이 분이 김유정의 5대조가 되는 사람이고, 실레마을에 처음 정착한 청풍김씨라고 한다.
춘성군문화공보실장과 강원도문화재계장을 지낸 김유환씨는 “청풍김씨가 처음 춘천지역에 정착한 것은 청풍부원군의 손자인 도헌(道憲) 선친께서 할아버지의 묘가 있는 서면 안보리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말했다.
청품김씨(청노상장공파-문의공파) 20세손인 김기순의 장남 병선(善·1818∼1878년)이 김유정의 증조부이고, 이 분의 1남1녀중 아들이 ‘김도사’로 불렸던 김익찬(金益贊·1845∼1909년)이다.
김익찬은 자를 자영(士英)이라 했고,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 사마좌임금부도사(司馬座任禁府都事·지금의 도지사와 같은 지위)를 지냈다.
조정에서 보면 음직(陰職)이라고 할수 있지만 춘천지방에서는 이미 만석꾼으로 불린 부자로 명성을 얻었다.
김유정의 아버지 김춘식은 자를 윤주(允周)라 했으며 진사시험에 합격해 사마좌임금부주사(司馬座任禁府主事)를 지냈지만 향리에서는 편히 ‘김참봉’이라고 불렀다.
“청풍김씨가 춘천 지역에 대략 30여세대 살고 있다”고 밝힌 김유환씨는 김유정이 춘천이 낳은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데 대해 “12촌 형님이 되시는 그 분으로 인해 종친들이 큰 자긍심을 갖고 살고 있다” 말했다.
용호선기자 yonghs@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