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일보사와 하이원리조트 공동 주최로 지난 21일 강원랜드 컨벤션호텔 컨벤션홀에서 진행된 '역사 속의 강원인물, 그들이 꿈꾼 삶' 세미나가 학계의 전문가와 문단의 중진작가는 물론 도내 각 지역 문화관광해설사와 문화계, 여성계 인사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강원문화유산의 재발견-인문학을 입히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홍섭 시인의 사회와 함께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지난 3년여간 강원일보 지면을 통해 소개된 강원의 인물과 한국문화의 인문학적 전통을 결합하는 다양한 논의가 펼쳐졌다. 특히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전통은 미래다'를 주제로 한 특별강연과 함께 어쿠스틱 밴드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의 미니콘서트, 강원의 역사 인물 전시회 등도 함께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전상국 “우리가 잊고 사는 강원도의 정체성 찾기에 중요”
오정희 “훌륭한 인물 전문적 사명감으로 발굴하길 기대”
이영춘 “호응 없으면 지속성 못 가져 … 더 큰 관심 필요”
김도연 “스물네 분의 삶에 들어가 큰 가르침 받은 기분”
■1섹션/역사 속의 강원인물, 길 위의 인문학
◇이홍섭(사회) 시인= 강원일보사와 하이원리조트가 지난 3년여 동안 진행한 이 공동기획은 36명의 강원인물을 재조명한 것은 물론 그들을 통해 지역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여러 방안과 팁(Tip)을 제시해 왔다고 할 수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문화콘텐츠'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인물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과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저명한 전문가와 작가들이 참여해 진행한 이 기획은 강원도가 보유하고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아카이브(Archive)로 축적하고 집중적으로 재조명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지속성을 갖고 추진되길 바란다.
◇전상국 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 강원도가 낙후되고 접근성 면에서 피해의식 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강원도의 힘, 강원도 정체성을 찾게 된 것은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라는 영화가 나오면서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때부터 지자체 등이 강원도의 힘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걸 보면 강원일보의 '역사 속의 강원인물, 그들이 꿈꾼 삶' 기획은 엄청난 계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강원도의 뿌리 정체성 찾기에 중요하다. 역사 인물들은 문화관광해설사들이 이용 할만한 원형 문화콘텐츠 아닌가. 강원도의 철학, 삶, 사상 등 우리가 강원도에 살면서 이미 선대가 걸어간 길을 보고 예측해서 우리의 길을 선택하는 게 우리 강원도민에게 있어 새로운 자신의 모습이 될 것이다. 또 강원도의 얼굴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기획 시리즈가 지속되길 바란다.
◇오정희 소설가=이태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봤다. 어떤 이념의 변화로 북한으로 갔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념과는 관계없다 해도 어떤 사회적 책무랄까 정의와 진실 이런 것을 향한 염원, 부재감 등이 자리 잡아서 이념대립이나 정치적인 면에서 숨어있던 곳에서 표출된 것이 아닐까. 혹은 일종의 작가들이 지닌 원죄 의식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됐다. 이에 반해 관기 고경춘은 기록이 미약했다. 이때는 작가의 상상력이 들어갈 수 있다. 고경춘의 생각을 내가 직접 들여다보고 상상력으로 물어보게 됐다. 이러한 훌륭한 강원인물을 전문적인 사명감으로 발굴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강원도라는 땅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고 죽어갔나 하는 생각들을 좀 더 깊이 있는 사유를 가져야겠다. 강원일보 측에서 허락된다면 지면도 늘리고 보다 많은 인원을 계속 조명해 주시기를 바란다.
◇이영춘 시인=이효석 선생의 단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문장이 시적이다. 물론 이런 시골에서의 자연적인 정서가 시적 감성과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어떻게 이런 시골에서 그런 인물이 나왔을까. '메밀꽃 필 무렵'에 소금을 뿌린 듯이 메밀이 하얗게 보인다는 묘사가 있는데, 실제 노루목 고개를 돌면 오른쪽 산비탈에 메밀꽃이 쫙 피어있었다. 달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는 것도 시적이다. 나는 역사 속 강원인물로 이효석을 조명했었다. 그런데 나조차도 재밌는 것만 읽고 안 읽은 것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누가 어떤 인물을 썼든 간에 열심히 읽어야겠다. 아무리 좋은 구슬이 백 말이 있더라도 꿰어야 보배로서 가치를 갖지 않겠는가. 역사 속에 묻힐뻔한 인물을 발굴, 조명을 해도 호응이 없으면 지속성을 가질 수가 없다. 내년에도 계속 진행된다고 하니 많은 분이 열심히 읽어 달라 당부하고 싶다.
◇김도연 소설가= 올해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평창이 고향인 나로서는 탄허스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그 다음 고경춘, 춘천 출신의 최근 인물 권진규 조각가가 인상 깊었다. 모두 스물네 분의 삶에 들어가며 느꼈던 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받드시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강원의 인물과 같은 큰 선택은 없었겠지만, 어떤 선택권이 나에게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 해 보게 됐다. 큰 가르침을 받은 것 같다. 보통 욕망이나 욕심을 좇아 선택할 텐데 이분들은 쉬운 선택이 아닌 선택을 했다. 다시 말해 역사 인물들이 그 시기에 내린 선택들은 나에겐 인상적이다. 이분들의 선택은 당장 내 목숨을 잃더라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전신재 “동해안의 굿거리 중 푸너리도 주목해야 할 유산”
진용선 “인문학 강좌 정례화·청소년층으로 저변 확산해야”
심재상 “강원도 문화유산 선양사업의 새 이정표가 될 것”
조승호 “도민 자긍심 갖도록 하기 위해 얼 선양사업 추진”
■2섹션/강원문화유산과 인문학의 미래
◇전신재 한림대 명예교수= 동해안의 굿거리에서 제일 처음에 연주하는 푸너리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화유산이다. 푸너리는 역동적이고 발랄한 생명력이 용솟음치는 음악이다. 외국 사람들이 푸너리에 매혹되고, 강원도 외부의 학자들이 푸너리의 예술성을 상찬하는데 정작 강원도 사람들은 푸너리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서양의 랩과 유사한 엮음아리랑도 강원도에만 있는 문화유산이다. 이들 문화유산을 대하면 강원도 사람들은 굼뜨다는 말이 무색해진다. 흙의 감촉을 통하여 예술의 원시성을 추구한 권진규의 테라코타 작품들, 문명에 물들기 이전의 인간의 원초적 천진성을 추구한 김유정의 소설들, 그리고 소박하고 진실하며 모나지 않고 무엇이나 받아들이는 박수근의 그림들도 강원도의 정체성을 설정할 때 우리가 원용할 만한 문화유산들이다.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역사속의 강원인물, 그들이 꿈꾼 삶'에서 다룬 문화유산과 역사 인물은 강원도 인문학의 몸체가 된다. 여기에 인문학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인문학은 대중이 세상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학문이어야 한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인간다움'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통찰의 인문학'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인문학 강좌에 가 보면 참가자 대부분이 60대 이상 분들이다. 이제는 정례화 및 저변 확산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상을 초·중·고교생 등으로 확산하는 고민과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는 물론 문화원과 교육청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좋을 것이다.
◇심재상 관동대 교수=강원도의 문화유산 인문학 등에서 김도연 소설가와 같은 분이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또 문화관광해설사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성, 구체성 그 둘이 한데 어울려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 된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것, 그 속에 의미와 가치 모두가 있어야 한다. 덧붙여 인문학적 소양과 교양을 갖추고, 감수성과 상상력 같은 자질도 길러야 하는 점을 강조한다. 강원도에 저같이 시시한 시인은 많은데, 김도연 소설가처럼 튼실한 작가는 적다. 김도연 소설가의 어깨가 너무 무겁다. 이번 작업은 우리 강원도의 문화유산 선양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이정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조승호 도문화재전문위원=감자바위 등 이런 용어들 때문에 도민 스스로 비하하고 피해의식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혁신적 운동이 필요했다. 이런 점에서 고민했고, 이 고민들이 주변에 확산됐다. 그래서 '강원의 얼 선양사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산업화 도시화 과정 속에서 발전이 소외된 지역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이런 점을 불식하고 스스로 자긍심 갖는 것. 우리 스스로가 순수성, 전통성 등을 시대정신으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훌륭한 업적을 가진 사람을 찾아서 선양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두 가지 방향이 있었다. 우선 사상 선양의 구심점이 된 유적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기념관, 문학관 등 많은 예산이 드는 유적지 조성사업이 있겠다. 다음으로 유적지가 조성되면 이를 구심점으로 하는 사상 선양사업, 세미나 등이다. 강원도를 비롯해 자치단체가 유적지 구축에 전적으로 매진하고 언론사 등이 사상 선양을 받쳐줬으면 한다.
정리=최나리기자 kwna@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