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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인생2막, 새 삶을 산다]아리랑 고개 넘는데 청춘을 다 바쳤다

`잘나가던' 독일어 번역사 접고 아리랑연구소 문 연 진용선씨

번역하며 대기업 초임의 5배 고수입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번역해주다

정선아리랑 뇌리에 박혀 고향 내려와

시간만 나면 채록과 녹음하러 다녀

해외로도 눈 돌려 수많은 책 저술

24년 세월 바쳐 수집 자료만 1만여점

"계급장 삶 안살았기에 너무 즐거웠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그대 당신은 어데로 갈라고 이 배에 올렀나

앞 남산의 청송아리가 변하이면 변했지

우리 둘이 들었던 정이야 변할 리 있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아리랑 중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덮인 작은 시골 폐교에 정선아리랑의 가락이 울려 퍼진다. 아우라지강과 골지천처럼 굽이굽이 서린 정한이 담긴 정선아리랑은 밭을 매거나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던 가장 한국적인 소리다.

이 소리가 좋고 자신이 해야 할 숙명처럼 느껴져 소위 '잘나가던' 통역사와 번역사, 토플 영어강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정선으로 내려와 정선아리랑에 24년의 세월을 바친 진용선(51) 정선아리랑연구소장. 탄탄대로 펼쳐진 미래를 과감히 버리고, 아무도 하려 하지 않던 아리랑 연구에 젊은 청춘을 쏟아부었던 진 소장의 노력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촉망받던 독일어 번역사

진 소장은 1963년 검은 석탄가루 날리는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에서 태어났다. 줄곧 신동읍을 벗어나지 못했던 진 소장이었지만 중학교 2학년 때 고향을 떠나 춘천중학교로 전학한 뒤 강원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인하대 독어독문과를 수석으로 입학·졸업한 수재였다.

대학에서 그는 하이네, 괴테 등의 독일 시문학을 접한 뒤 젊은 시인들의 시를 번역해보고 싶어 미친 듯이 독일어에 매진했다. 인하대학원에서 비교언어학을 공부해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로는 곧바로 번역작업에 뛰어들었다. 유명 번역회사이던 싱가폴 휴먼서비스에서 번역사로 당당히 일을 하게 됐고, 밤에는 인천 예일외국어학원에서 토플 강사로 뛰었다. 돈 버는데 심취했던 그는 당시 대기업의 대졸 초임이던 50만~60만원보다 5배 이상 많은 월 300만원 이상의 고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틀에 박힌 일상과 도시생활에 갑갑함을 느끼던 진 소장에게 우연찮은 기회에 아리랑이 다가왔다. 뮌헨박물관장을 안내하다 함께 만난 독일 에칭판화가 한명이 아리랑을 물어왔고, 진 소장은 아리랑 가사를 독일어로 번역해 알려줬다. 하지만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를 떠나는 임에 대한 애증이 담긴 표현 대신 '발에 병이 났다'고 알아듣는 독일 판화가로 인해 번역의 한계를 알게 됐다. 이때 정선아리랑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고 한다.

“대학원 시절 연규환 전 정선부군수에게 인사를 갔는데 '아리랑의 정리와 채록이 필요하다. 정선아리랑은 이제 젊은 사람들이 연구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89년 진 소장은 마침내 학원과 번역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정선아리랑이 열어 준 인생 제2막

고향에 돌아와 많은 고민과 방황을 하다 부친께 '아리랑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당장 때려치우라는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인 1990년 본격적인 아리랑 공부에 돌입했다. 시간만 나면 녹음기와 수첩을 챙겨 들고 정선아리랑의 채록과 녹음을 하러 다녔다.

1991년 11월9일 정선군 신동읍 함백초의 옛 매화분교가 폐교된 자리에 정선아리랑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당시 진 소장 나이 28세다.

이때만 해도 정선군에서 알고 있는 정선아리랑의 가사는 400여수에 불과했다. 진 소장이 정선 곳곳을 돌아다니며 채록한 가사로 인해 1993년 정선아리랑 가사 수는 1,200수로 늘었고 이를 정선아리랑 가사집으로 묶어 발간했다.

“정선아리랑 가사는 현재 8,700여수에 이르고 있어요. 정선군 9개 읍·면을 직접 발로 뛰었죠. 골골을 다니며 만나는 모든 이의 이름을 적고 아리랑 가사를 채록하고 녹음하고 이것이 제가 한 일입니다. 하도 다니다 보니 정선 9개 읍·면의 지도를 직접 손으로 그리겠다는 꿈도 꾸었는데 이젠 그 소망을 이뤘죠.”

진 소장이 보여 준 '단어장 카드 수첩'에는 그 마을의 지도와 함께 옛 지명, 만난 사람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60여권에 이르는 이 수첩이 9개 읍·면 각각의 지명 유래집으로 발간돼 정선군의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진 소장은 해외로도 눈을 돌렸다. 독립군의 후예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채록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미국, 일본, 쿠바 등지를 돌아다녔다. 중국조선족이 거주하는 동북3성 일대만 23회, 러시아 연해주 일대 8회, 일본 12회에 걸쳐 현지조사를 했다. 그 결과물은 중국 조선족아리랑, 러시아 고려인 아리랑 연구, 일본 한인 아리랑 연구 등 수많은 책으로 저술됐다.

이 작업에 20여년을 쏟아부었다. 진 소장이 저술했거나 공저한 '아리랑' 관련 서적만 54권에 이른다고 하니 그 노력이 어땠는지는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현재는 중앙아시아 아리랑을 조사 연구 중인데 5~6년은 걸릴 것 같아요. 5월부터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강제 이주됐던 고려인들이 되돌아오고 있다니, 가서 그들이 아는 아리랑을 채록해 올 계획이에요. 30대 때에는 날아다니겠더니 이젠 힘들어서 15일씩 연간 2~3번 가는 것도 힘에 부쳐요.”

■아리랑에 바칠 향후 10년

진 소장이 그동안 수집한 자료만 1만여점에 달하고, 자신이 만든 추억의 박물관에서 아리랑 기획전, 2012년 국립민속박물관 아리랑 특별전, 지난해 일본 오사카·도쿄에서의 '아리랑-The Soul Of Korea' 특별전 등을 통해 이를 공개해왔다. 정선아리랑 연구에 24년을 바친 지금, 진 소장은 자신의 연구물을 정리하는데 10년의 기간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아리랑 특별전을 열었을 때 자신이 모은 1931년부터 1945년까지의 음반 50여종에 대해 도록을 만들고 해제를 풀어썼는데 엄청난 반응을 얻으며 자신이 감동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진 소장은 아리랑 자료를 정리하는 앞으로의 10년이 가장 재밌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애장품을 만지작대고 이를 만난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도록 그동안 수집한 자료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갈 계획이에요.”

아리랑에 청춘을 바친 진 소장의 신념과 믿음은 늘 한결같다. “권력이나 돈과 관련된 직업이라면 누가 20년 넘게 하도록 놔두질 않았겠죠. 저는 계급장의 삶을 살지 않았기에 지난 20여년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진용선 소장이 민간 연구소를 차려 누구의 참견도 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20여년이 한국은 물론 세계에까지 아리랑의 소중함을 알려준 만큼, 향후 10년의 정리 기간을 거친 아리랑은 우리에게 어떤 즐거움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 오른다.

정선=김영석기자 kim7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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