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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마음의창]천만근의 여울

허태수 춘천성암교회 목사

“산을 좀 보세요.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네요.” “물을 좀 보세요. 여름의 물빛과는 다르게 정갈하게 흐르네요.” 사람들이 그저 산을 말하고 물을 본다. 그러나 산이 산이 되고 물이 물이 되는 것은 '그저' 되는 건 아니다. 산이 산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요, 물이 물이 되기란 그 또한 간단한 일이 아니다.

청원(靑原) 대사가 말했다. “내가 삼십 년 전에 세상을 모르고 살 때는 산을 보아도 그것이 산이요, 물을 보아도 그것이 물이더니 내가 세상을 알고 보니 산은 이미 산이 아니요, 물은 이미 물이 아니더라. 그런데 지금 다시 세상을 떠나 산과 물을 바라보니 산은 그대로 산이요, 물은 그대로 물이더라.”

율곡이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며 '내 속에' 산을 찾기 위함이요, '내 속에 물'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속에 존엄성이라는 산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위대성이라는 바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존엄성'과 '위대성'을 졸렬한 인식과 자만으로 오인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런 존재적 패착을 '존엄'이라 하고 '위대성'이라 우기고 믿는다. 산은 사람 안에도 있고 사람 밖에도 있고 또 사람이 되기도 한다. 물은 사람 안에도 있고 사람 밖에도 있고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어진 사람이 산을 즐김은 산이 되어 즐기는 것이요, 아는 사람이 물을 좋아함은 물이 되어 즐기는 것이다. 내 속에 산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내 속에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그래서 그 속에서 법신을 보고 설법을 들으려고, '어진 산' '아는 물' 속으로 들어갔었다, 어제! 그러나 또 어제, 산과 물 밖으로 나왔다. 도저히 산이 되고 물이 될 수 없는 한계, 낙엽 위에 얹히는 발걸음이 천만근(千萬斤)이고 여울에 부딪히는 숨소리가 우레였기 때문이다. 산은 그대로 산이고 물은 그대로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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