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운구곡도첩'은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1624~1702년)의 화천군 사내면에 있는 유거지와 그 사내천을 따라 이어지는 아홉 굽이인 곡운구곡을 그린 그림이다.
김수증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년)의 손자로, 그 집안은 서울 장동(壯洞)에 살면서 당시 서인-노론을 주도했던 유력 가문이었다. 김수증이 화천에서 구곡을 경영하게 된 것은 1670년에 농수정을 지은 후, 사화와 당쟁으로 어지러웠던 1675년에 화천 은거지(隱居地)로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이 그림은 17세기 실경산수화의 이른 예이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의 은거지인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전거(典據)로 그렸다는 점에서 한국 회화에서 중요한 그림으로 거론돼 왔다. 화첩은 김수증이 쓴 '곡운구곡산도(曲雲九曲山圖)'라고 크게 쓴 글씨와 유거지를 그린 '농수정도(水亭圖)', 일곡(一曲) 방화계(榜花溪)부터 구곡(九曲) 첩석대(疊石臺)까지 구곡 그림 등 총 10점의 그림으로 이뤄졌다.
곡운구곡도 이전에 조선의 구곡 그림의 전통은 중국의 주제를 그대로 그린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와 이것이 조선화된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가 있었다. 16세기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년)가 황해도 고산에서 구곡을 경영한 것은 후학들에게 주자의 도학적 삶을 따르는 모범이 됐다.
그의 조카 김창협(金昌協·1651~1708년)이 김수증이 곡운구곡의 풍광을 실제와 닮게 그리게 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평양 화사 조세걸을 불러 김수증이 직접 구곡 곳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각 곡마다 마치 거울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했다고 한다. 주변 지리적 특징과 풍광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했던 것이다.
<이혜경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