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출토된 이 불상은 허리가 가늘고 긴 장신형으로 통통한 얼굴에는 긴 눈과 작은 입으로 고요하게 명상에 잠긴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불상 뒷면에 주조 구멍을 막아 도금을 했고, 자연스러운 물결무늬 옷주름을 입체적으로 조각한 수법을 보면 이른 시기 금동불의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균형 있고 조화로운 모습이 아니라 경직된 모습이다.
반면에 홍천 물걸리 절터 인근에서 발견된 금동불상은 알맞은 신체 비례와 균형 잡힌 몸매, 적절한 양감이 돋보이는 8세기 통일신라 전성기의 우수한 불상이다. 약간 나온 배와 다리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옷주름, 등 뒤에 댓잎 모양으로 뚫린 주조 구멍과 무릎 높이 부분의 광배 고정용 촉 등이 관찰된다. 9세기가 되면 옷주름이 선각으로 변하고 신체 표현에서도 사실감이 다소 떨어지지만 신체에 밀착된 옷주름이 배와 다리에서 Y자형을 그리며 흘러내리고 잘록한 허리가 강조되는 등 신체 표현이 드러나 있다. 이 불상들의 수인(손갖춤)은 시무외여원인인데 한 구는 손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다.
2003년 국립춘천박물관에서 발굴한 홍천 물걸리 금당 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삼신불로 추정되는 대좌 구조가 확인됐다. 이로써 9세기부터 삼신불이 성립된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삼신불은 법신불 비로자나, 보신불 노사나, 화신불 석가의 삼신불을 말한다. 중국의 경우 당 중기인 9세기 이후에 조형화된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는 물걸리 절터의 예로 보아 신라 말 고려 초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금당지에서 발견된 철불 편은 나발의 크기가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두 개체의 철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얼굴 일부가 남아 있는 철불 편으로 유추해 보면 매우 사실적이고 이상적인 불상의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지방 각지에서 유행한 선종에서는 특히 철불을 많이 모셨다. 통일신라 말 선종의 지증대사는 단의장 오주가 헌납한 현계산 안락사(지금의 거돈사)에 금을 입힌 장륙 철불상을 주조했고 문경 봉암사에 절을 지을 때는 철불상 두 구를 주조해 땅의 기운을 누르고 주변을 위호했다는 기록이 그의 비문에 전하고 있다.
김대호기자·국립춘천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