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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호등]'부침개'와 '백년대계'

원선영 사회부 차장

"어떻게 이런 정책으로 결혼이 앞당겨질꺼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건지 모르겠네요"

"소꿉놀이 하나요. 정책 시행의 목적이 노동력과 저출산 해결이라면 번지수 잘못 찾았습니다"

"7살(만5세)부터 학원 뺑뺑이 시키라고? 말도 안되는 정책입니다"

지난 8월1일. 2025년부터 '만5세의 초등학교 입학'을 추진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를 토대로 작성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600여개의 댓글 중 해당 정책을 옹호하는 의견은 매우 극소수였다. 지역 맘카페와 커뮤니티도 발칵 뒤집혔다. 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글에 수십개의 호응글이 달렸다.

온라인 밖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5살 아이를 키우는 지인은 당장 현실적인 고민부터 털어놨다. 다수의 공립 초등학교가 1~2학년을 오후2시 이전에 하교 시키는 경우가 많아서다. 어린이집에 의존하는 맞벌이 부부에게 큰 벽이 될 수 밖에 없는 정책이다. 이것저것 다 떠나 "8살 짜리 아이가 자기 몸집만한 책가방 메고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짠한데 7살에 학교를 어떻게 보내냐"며 혀를 끌끌 차는 이들 역시 적지 않았다. 이 무더위를 뚫고 거리로 나온 이들도 있었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과 전국 시·도교육청 앞에는 해당 정책을 철회하라는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에는 교육계 관계자와 관련 단체, 학부모들이 참여했다.

교육현장, 돌봄의 현장,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할 이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 왜 인터넷 뉴스 댓글창을 열었을까.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뒤늦게 "국민이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교육정책이 '부침개'냐"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 자체만으로도 만5세 조기 취학 정책은 시작도 하기 전 실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국민적 공감' 의 부재다. 흔히 '백년대계'라 불리는 교육 정책을 단 한번의 공론화 과정도 없이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치명적 실수다. 우선 만5세의 취학의 명분부터 '조롱'의 대상이 됐다. 교육부는 "저출산·고령화로 노동인구 감소가 예상되는만큼 취학연령을 낮춰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사회 진출 및 결혼, 출산연령까지 앞당기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들은 "학교에 빨리 간다고 결혼도 빨리 하느냐" "아이를 단순히 생산인구로만 보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사회진출과 결혼, 출산이 늦어지는 근본적 이유와 해결책을 찾지 않고, 취학연령을 낮추는 '꼼수'를 쓰려한다는한 반감이다.

부작용도 상당하다. 만5세 입학이 현실화되면 2018~2022년 출생아들은 다른 연령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 한 학년은 26만~33만명 규모로 형성되지만 해당연도 출생아들은 한 학년이 40만명 안팎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입시는 물론 취업 경쟁에서도 불리하다. 맞벌이 부부들의 현실적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정책 도입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교육인프라도 필요하다.

교육 정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준점이다. 더 나아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 더 큰 울타리가 되는 조부모와 가족 구성원들, 교사, 돌봄 종사자들, 공무원 등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삶과 이어져 있다.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안목과 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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