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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호등]'녹야'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원선영 문화교육부 차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은 세뱃돈이나 한 달 용돈이 얼마 정도나 될까요?" →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꾸 살기가 힘들어지고 싫어집니다."

"산타 할아버지 나이는 몇 살인가요?" →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

"엄마랑 싸웠어요. 그 전에도 약간 기분 안 좋던 상황..." → "갱년기 때는 그러는 수도 더러 있어요. 널리 이해해 드리세요"

"너무 싫은 사람이 있는데요. 어떻게 해야 하죠?" → "안보면 돼요. 나타나면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있으세요."

이런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지난 3월 별세한 네이버 ‘지식인(iN)’의 스타, 고(故) 조광현옹은 무려 5만 3,839개의 주옥 같은 답변을 남겼다. 아이디는 '녹야'. 푸른 들판이란 뜻이다. 치과의사였던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인체 건강, 치아 유지 분야는 물론 연애와 결혼, 생활, 교육 등 20여년간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답변 자체도 인상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따뜻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일상의 고민에, 대책이 없는 엉뚱한 질문에 인생의 지혜가 담긴 답변을 한자 한자 정성껏 달았다. 누구에게도 답을 구할 수 없어 온라인 공간을 찾아든 이들을 위로해주는 유능한 상담사였던 셈이다.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녹야 할아버지'의 빈 자리는 그래서 더욱 크게 와 닿는다.

어떤 질문에도 응답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내 편'이 있는 것과 다름 없어서다. 애초에 정답을 구하려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니 진심 어린 위로와 공감만으로도 문제 풀이는 끝이 난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고립되고, 꽉 막힌 현실에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순간이 언젠가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씩씩하게 극복해 가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서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아직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겪는 우울감은 어른의 그것보다 더욱 크게 다가온다. 한낱 '성장통'으로 치부하기엔 끊임없이 들려오는 10대들의 비극적 소식이 너무 무겁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익명의 커뮤니티를 서성이고, 적지 않은 이들이 몸만 자란 '어른'으로 살아간다.

힘든 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녹야 할아버지'처럼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말에 귀 기울여주던 옆집 언니, 놀이터에 앉아 도란도란 넋두리를 나눴던 친구들, 남몰래 고민을 털어놓던 선생님. 모두 누군가의 '녹야 할아버지'였을테다. 메마른 일상에 단비같은 위로 한마디, 지혜가 담긴 조언 한마디가 일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누군가의 '녹야 할아버지'가 되자. 친구에게, 직장 동료에게, 부모님에게, 익명의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자. 지금보다 좀 더 따뜻한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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