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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초점]위기를 기회로 극복한 선덕여왕의 디자인씽킹

이보람 디자인씽킹뮤지엄 관장

◇이보람 디자인씽킹뮤지엄 관장

디자인씽킹과 디자인경영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경영 키워드로 급부상하며 디자인학을 비롯해 경영학에서도 이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막상 디자인씽킹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변하기 어려워한다. 디자인씽킹은 개념과 수행과정을 알면 누구나 발전시킬 수 있는 인생의 핵심역량이다.

신라 제27대 국왕이자 우리 역사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디자인씽킹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역사적 인물이다.

선덕여왕은 안타깝게도 왕위에 오를 때부터 험난한 위기에 봉착했다. 바로 칠숙의 난이다.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 말년에 벌어진 칠숙의 난은 여자가 왕위에 오르는 사태에 반발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선덕여왕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남성 중심 문화로 인해 자신을 왕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일찍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고자 했다. 선덕여왕은 즉위 직후 대사면을 단행, 자신이 왕이 된 것을 만백성에게 알렸고 조세를 1년간 면제해 역사상 첫 여왕을 마주한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럼에도 여왕의 권위는 지속적으로 위협받았다. 백제와 고구려로부터 빈번한 침공을 당해 신라의 핵심 요충지였던 대야성을 비롯한 40여개의 성을 빼앗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농경사회를 살아가던 백성들은 가뭄을 비롯한 자연재해로 큰 고통을 받았다. 당시 백성들의 피폐해진 삶 이상의 분노가 여왕에게 향했다.

선덕여왕의 디자인씽킹은 미신적 사상에 대응하는 종교적 계몽, 그리고 왕권 강화였다. 여왕은 당시 민속신앙에 지배당하던 백성들의 믿음을 불교에 귀의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여왕은 당나라에 유학하던 자장을 불러들여 절을 짓고 불교사상을 전파함으로써 왕권 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다. 특히 5대 적멸보궁이 선덕여왕 때 건축됐었으며 황룡사구층목탑도 자장율사에 의해 건립됐다.

선덕여왕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백성들의 생각과 믿음이 모두 ‘하늘의 뜻’으로 귀결되는 것이 나라를 융성하게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주요 요인이라 판단했다.

선덕여왕이 건립한 첨성대는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높이와 구조를 살펴보면 별을 관측하기에는 부적합했다. 더욱이 첨성대는 안으로 들어가는 문조차 없다. 첨성대는 총 27층으로 쌓아 올린 건축물로 네모난 창을 기준으로 위아래 나뉜 12단, 사용된 돌의 개수는 362개다. 신라 27대 왕, 12개월, 24절기, 362개 1년의 날수의 의미가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것은 백성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실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건축물을 통해 가르침과 동시에 ‘여자가 왕이 되어 나라가 기운다’라는 어두운 믿음을 걷어내고 밝은 빛을 드러내고자 하는 선덕여왕의 의지가 담긴 건축물이었다.

선덕여왕의 미완성형 솔루션은 고민하던 문제점들을 해결했을까? 선덕여왕 말년에 일어난 비담의 난은 디자인씽킹의 다섯 번째 단계인 솔루션에 대한 테스트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신라 최고 귀족이었고 화백들의 수장이었던 비담이 역모를 일으키면서 내건 명분이 ‘여주불능선리(女主不能善理)’, 즉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이 디자인한 솔루션은 실패한 것일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 당신이 선덕여왕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성군의 모습이라면 여왕은 디자인씽킹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인물인 것이고, 만약 성군의 모습이 아니라면 그녀가 디자인한 솔루션은 실패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신이 떠올리는 선덕여왕의 모습은 어떠한가?